“우리 교회의 순교 전통을 재확인하는 지금은 한국 복음화 제3세기의 새로운 장을 여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성식을 통해 이 땅의 빛이 되기 위한 우리의 결의를 새롭게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참다운 사랑과 평화, 그리스도의 자유와 정의를 선포하는 사도가 되고자 합니다.”
1984년 5월 6일.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은 103위 시성의 순간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25년이 흘렀다. 은경축을 맞은 우리 순교신심은 그동안 한국 교회에 어떠한 바람을 불게 했을까.
▧ 한국 교회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Ⅰ
김수환 추기경이 강조한 바와 같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봉헌했던 ‘복자 103위 시성식’은 한국 복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시성식은 한국 교회의 양적 팽창을 가능케 했으며 질적 성장이라는 실한 열매도 거뒀다.
우선 시성식 이후 가시적으로 보이는 변화의 바람은 ‘한국 천주교회의 신자 수’다. 전례없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과 현지에서의 시성식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고 많은 관심을 보냈던 것이다. 기존 신자의 경우에도 시성식은 신앙의 활력을 불어넣는 하나의 원동력이었다.
1983년 171만1,367명이었던 한국 천주교 신자 수는 시성식이 열린 1984년 184만8,476명, 다음해인 1985년 199만5,905명이 된다. 놀라운 것은, 시성식 당해 연도인 1984년부터 1985년 사이 인구 증가수가 40만4,788명으로 전 해인 1983~1984년 49만553명에 비해 적게 늘어났음에도 불구, 신자 수는 오히려 1만320명이 늘었다는 점이다.
한국 교회의 신자 수는 이후 해마다 증가하며 1986년 200만 명을 넘긴 214만8,607명이라는 비약적 발전을 거두게 되며, 1992년 300만 명을 돌파한 후 현재는 약 500만 명이라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 한국 교회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Ⅱ
시성식 이후 불어온 가시적 변화의 바람이 신자 수 증가라는 교회의 ‘양적 팽창’이었다면, 보이지 않는 변화의 바람은 교회의 ‘질적 성장’이었다.
가톨릭대사전은 시성식 이후 성과에 대해 ▲신자들의 자발적 사적지 순례 ▲순교자 공경활동 ▲각 교구의 교회사연구소 설립 ▲자료수집과 연구활동 ▲교구차원의 사적지 개발과 기념관 건립 ▲다른 순교자 시복시성을 위한 노력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실제로 시성식을 전후로 수많은 기관?단체들이 생겨났으며 순교자 공경을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일었다. 1983년 설립된 호남교회사연구소와 서울대교구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 1984년 개발되기 시작한 천호성지 등은 103위 시성이 가져온 변화의 바람에 한 예라고 보인다.
외국 성인명만을 세례명으로 써오다 한국 성인명을 세례명으로 쓸 수 있게 된 것도 한국 교회 내 큰 변화의 바람이었다. 시성을 기점으로 한국 신자들도 한국 성인명을 세례명으로 쓰며 그들의 신앙을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성식 이후 각 본당들은 한국 성인명을 세례명으로 쓰기 위해 많은 노력도 기울였다. 대건 안드레아, 하상 바오로, 정혜 엘리사벳 등이 그 예다.
주보성인을 한국 성인으로 둔 본당들도 생겨났다. 한국성인을 주보성인으로 한 본당들은 시성식을 이후로 점차 증가하더니 현재는 많은 본당들이 한국성인의 이름을 주보성인으로 두고 있다.
특히 기존 주보성인이 있는 본당은 제2주보성인을 한국성인의 이름으로 하기도 하는데 대구대교구는 제1주보성인을 루르드의 성모로, 제2주보성인을 성 이윤일 요한으로 하고 있으며 서울 천호동본당의 경우에도 성녀 안나와 함께 성 김성우 안토니오 또한 주보성인이다.
영남교회사연구소 마백락 부소장은 “한국 교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한 성년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103위 성인이 탄생할 수 있었고, 정식으로 성인의 풍모로 변모할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교황님의 한국 방문과 시성식이었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시성식 당시 쓰레기를 하나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여 천주교에 대한 대외인식을 새로이 했던 점, 전국 성지순례가 한국 교회 내 하나의 문화로 자리한 점 등도 시성식이 가져온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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