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이래 국제노동기구(ILO)는 소위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를 주장했다. 일다운 일은 안전한 노동조건, 공정한 수입, 노동자와 가족에게 사회보장 혜택을 제공하는, 생산적이고 보상적이며 안정된 직업을 말한다. 일다운 일이란 의미에는 개인적 개발과 사회적 통합 양자의 측면에서 전망 있고, 기회와 처우에서 평등할 것도 내포한다. 또한 일하는 사람이 자기 생활에 영향을 주는 결정에 관심을 표현하고 조직하며 참여할 자유가 있음도 의미한다. 일다운 일자리 채용(decent employment)은 가난한 이들이 빈곤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지속적인 기반 위에서 빈곤을 감소시키려는 진지한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모든 이를 위한 일다운 일은 단순히 선택적인 정책이나 의무가 아니라 100년 넘게 가톨릭 사회교리가 보호, 촉진하고자 애쓴 길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불행히도 사회교리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많이 경주하지 않고, 심지어 많은 사제들과 수도자들도 딱딱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주제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런데도 국제노동기구가 1999년부터 주장하였던 이슈들은 거의 다 역대 교황들의 사회회칙과 같은 맥락이었다. 사회교리는 1891년에 교황 레오 13세가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가정과 노동, 임금 등을 개진하고, 1931년에 교황 비오 11세가 회칙 ‘사십 주년’에서 다시 확인한 이래 역대 교황들이 괜찮은 일자리와 임금, 사회의 여러 혜택들을 늘 강조하였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노동하는 인간’ 제16-23항에서 이 주제들을 훨씬 더 자세히 다루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과 인도는 좀 나아졌으나, 아직 절반 이상이 절대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세상에는 빈곤선인 하루 2달러 이하로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만큼 돈을 많이 못 버는 13억의 인구가 있다. 선진국의 일반 직장인들도 실직, 불완전 고용, 저하되는 근로조건과 투쟁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임시직, 아웃소싱, 계약직, 하청계약이 점차 회사 운영의 일반적인 방법이 된다. 이런 관행은 노동자와 중산층의 권리를 약화시키고 직업 불안정을 초래한다. 세계의 모든 정부와 고용인들이 소위 노동시장 유연성을 늘리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만, 불평등과 경제 불안정을 더욱 야기할 뿐이다.
2007년 유엔 자료에 의하면, 세계의 총고용 중 농업이 34.9%, 공업 22.4%인 반면 서비스 직종은 42.7%이다. 서비스 직종은 낮은 임금으로 악명 높으며 불안정하고 경우에 따라 보험과 같은 공식적인 사회보장 혜택이 없다. 겉으로 보기에 서비스 직종이 이전 시대의 공업 직종보다 더 깨끗하고 덜 투박해 보이지만, 이 서비스 분야의 상당수 직업이 일시적이며 불안정하고 노동강도가 높을 때가 많다.
2009년 노동절을 맞이하여 세계화 속의 한국 노동 상황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8 팩트 북(Fact Book)에 의하면, 이 회원국들의 연평균 근무시간은 약 1,777시간이었다. 남한 노동자들은 2006년에 연평균 2,357시간을 근무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 리스트에서 가장 높은 순위였다. 이처럼 장시간 근무하면서도 1인당 국민총생산이 2만3,038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제23위여서 이 기구의 평균 3만1,468달러보다 매우 적었다.
한국은 열심히 일하는 이들 덕분에 전반적으로 경제이익을 많이 올렸다. 하지만 이 이익은 아직까지 보통 사람들에게 광범위하게 아래로 침투되지 않았다.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한국 중산층 붕괴로 빈부격차는 더 커졌다. 2007년 7월에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되었지만, 약 840만 명 또는 총 노동인력의 37%가 임금, 보험 혜택, 노동조건 등에서 차별받는 비정규직이다. 한국인들은 비싼 사설학원비와 개인지도비로 점점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압박감으로 계속 지친다. 주거비용도 엄청나게 치솟는다. 국가 경제성장률 상승에 비례하여 일반 가족 생활수준이 얼마나 향상될까? 이런 악조건에서 비정규직은 한국 사회에서 크나큰 윤리적, 사회적 문제를 계속 확대할 것이다.
도요안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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