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했는데…. 범부는 어쩔 수 없이 집착(執着)의 망상에서 벗어나기 힘든가 보다. 지난 5월 2일 부처님 오신 날, 불교를 조금이나마 피부로 접하고 싶은 집착에 등 떠밀려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한 사찰을 찾았다.
성불(成佛)의 서원(誓願)을 일으킨 수많은 보살(菩薩)들이 도량(道場 : 부처와 보살이 머무는 신성한 곳)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국사회에 이렇게 많은 불교 신자가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청아한 독경소리 속에서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이는 수많은 불자들의 모습에서 한국 불교의 저력을 읽을 수 있었다. 한국인의 의식구조 속에 깊게 뿌리내린 불교의 탄탄한 기반이 부러웠다.
불교와 천주교는 닮은 점이 많다. 불자들은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에 귀의하고, 천주교 수도자는 ‘청빈·정결·순명’ 3대 서원을 한다.
성직자 수도자가 독신생활을 하고, 침묵 수련을 하는 등 진리 추구 방편 또한 닮은꼴이다. 불교에선 ‘똥치는 작대기’에도 부처가 있다고 하고, 천주교는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고 한다. 기도문을 반복적으로 암송하는 염경기도(念經祈禱) 전통도 비슷하다. 묵주 54알(도입부분 제외)을 두 번 돌리면 108염주가 된다.
걸어온 발자취 또한 판박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가 불교 교단의 정립을 두고 카리스마적 방식에서 가부장적 방식으로 변화했다고 말한 지적은, 천주교에 그대로 적용해도 별 무리가 없다.
초기 불제자들의 생활방식 또한 초기 천주교 공동체 모습과 똑같다. ‘상가’(산스크리트어:Samgha)로 불리는 원시불교 공동체는 함께 일하고, 이윤은 공평히 분배했다. 마치 사도행전 4장 32-37절(초대 교회의 공동체 생활)을 그대로 옮겨 놓은 모습이다.
하지만 불교와 천주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강이 분명히 있다. 천주교가 회개와 복음, 믿음에 무게중심을 두고 하느님 나라를 추구한다면, 대승 불교(한국 불교)는 고통의 원인인 번뇌의 절멸한 상태(열반, 涅槃)에서 이타행(利他行)을 통한 세상 구제를 말한다.
무엇보다도 불교에는 ‘은총’이 없다. 천주교 신자라면 누구나 체험하는 ‘은총을 받는 은총’이 불교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천주교 신자 시각에서 보면, 불교는 진리의 길을 참으로 멀리 돌아서 간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시야를 한국 사회로 좁힌다면 불교와 천주교의 차이는 더욱 명확해 진다. 불교는 스님들이 주지 자리를 놓고 각목 휘두르며 싸워도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는다. 코끼리가 모기에 한번 물리는 격이다. 더 나아가 한국사회는 스님들의 일탈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대하다.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교회 신부님들이 주교 자리를 놓고 편이 갈려 각목 싸움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 쌓아올린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 분명하다. 성직자 수도자들의 일탈도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다. 뿌리가 얕기 때문이다. 불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한국교회는 아직 한국인들의 심성에 ‘우리 종교’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정신 바짝 차리고 정진(精進)해야 하는 이유다.
천주교가 불교처럼 대다수 한국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아련하게 자리할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두 손을 모아본다. 합장(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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