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어릴 적 꿈은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용감무쌍한 장군이었다. 세상에 조금씩 눈떠가면서 이상이 변하듯 꿈도 다양하게 변했다. 그 가운데 옛 기억을 뒤적일 때마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꿈은 ‘탐험가’와 ‘고고학자’다. 지금도 늘 가슴 한켠에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병이 도질 때면 산이고 바다를 헤집고 다니던 추억이 심장의 박동수를 높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내게 어린 마음에도 용서하기 힘든 ‘적’이 있었으니 바로 도굴꾼이었다.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소중한 인류의 역사를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만드니 그만큼 나쁜 일도 없다는 생각에서였다(어린 마음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기특한 면이 없지 않다). 삶을 더해오면서 이런 어릴 적 생각이 그리 틀린 게 아님을 실감할 때가 적지 않았다. 우리 역사 속에서 도굴꾼들의 손아귀에 사라져버린 찬란한 문화유산의 흔적을 더듬을 때면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가 끓어오르곤 했다.
어른이 된 지금 옛 시절의 ‘적’은 ‘경제제일주의자’ ‘배금주의자’로 바뀌었다. 경제적 이익을 앞세워 인류가 쌓아온 역사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오랜 세월 자연이 이뤄온 역사를 하루아침에 무로 돌려버리는 일을 서슴지 않으니 도굴꾼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는 존재라는 생각이다.
유네스코가 꼽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계자연유산 가운데 금세기가 지나기 전에 인류가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것들이 적지 않다. 세계 최대 산호초 밀집지대인 호주의 대보초 그레이트배리어리프도 그 가운데 하나다. ‘내가 살고 봐야지’ 하는 명분에 사라져가고 있는 수억 년 나이의 갯벌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한편에서 사람들은 겨울이 겨울답지 않고 봄이 봄 같지 않다며 ‘이상기후’라고 한다. 자신이 저지른 일은 생각지 않고 예전과 다르니 이상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껏 인간이 초래한 환경 파괴를 돌아보면 결코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상(異常)’도 되풀이되는 일상이 되면 더 이상 이상이 아니라 정상이 된다. ‘이상’이 ‘정상’이 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이상한 일이 일상 다반사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이다. 일반인들의 눈길이 온통 딴 데 쏠려있는 사이 국토해양부는 지난 4월 20일 ‘4대강 기획단’을 ‘4대강 추진본부’로 확대 개편하면서 수자원 전문가를 본부장으로 영입했다. 새 본부장은 취임 7일 만에 대통령 보고회를 주관했다. 보고회 일정을 일주일 앞두고 본부장을 새로 임명한 것도 납득하기 힘들지만 현황 파악하기도 벅찬 시간에 14조원짜리 마스터플랜을 어떻게 짜서 보고할 수 있었는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필자가 이상한지 모르겠다. 새 본부장이 오고 나서 일주일 새 낙동강 수심을 6m로 바꾸는 등 사업의 굵직한 줄기도 바뀌었다. 공교롭게도 ‘수심 6m’는 대운하 계획 때 나왔던 얘기다.
많은 이들이 요즘 아이들은 꿈을 꾸지 못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실상은 아이들이 꿈을 꾸고 그 꿈을 키울 수 있는 터전인 자연을 파괴해놓고 꿈을 꾸라니 그것 또한 궤변이 아닌가.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곧 모두의 꿈을 파괴하는 일이다.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든다면 온갖 생명들로 충만한 아침을 맞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침묵의 아침’을 맞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 때는 정말 이상한 일이 더 이상 없게 될지 모른다. 모든 이상한 게 정상이 되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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