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걱정스러웠던 점은 애들이 내가 가진 약점들을 닮지나 않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난 늘 그것이 불안했다.
내게도 물론 장점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나는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기까지 나를 닮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래, 제발 엄마를 닮지 마라. 지독할 정도의 소심함이며, ‘딱’ 소리 나게 할 말 한 번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는 성격하며, 게으름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모로 내 성품과 성질은 아예 비슷하지도 마라.’ 이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기도였고, 진정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래, 제발 깔끔해라. 엄마처럼 정돈하는 재주도 없고, 너절하게 어지럽히며, 뭐든 정신없이 척척 걸쳐놓는 버릇도 절대 닮지 마라. 똑똑하고, 강하고, 지혜롭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거라.’ 나는 빌고 또 빌었다.
‘엄마처럼 열 번을 읽어도 제대로 내용파악이 안 되는 진저리나는 나쁜 머리 말고, 한 번만 읽어도 내용을 앞서 읽어 내는 총명함을 가져야 한다. 가능한 한 머리가 좋았으면 좋겠구나.’ 나는 우리 아이들이 21세기의 주인공으로 태어나 늠름하고 산뜻하며, 당당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 전까지,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시장을 보면서도, 내 마음 속에는 늘 기도가 맴돌았다. 그래,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영락없이 나를 닮았다. 할 말도 못하고, 저 혼자 낑낑 앓았으며, 입을 닫고 혼자 울기도 했다. 머리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고, 공부에 독하게 달려들지도 않았다.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속 터지게 했던 것은 밖에서 얻어맞고 울면서 집으로 들어올 때였다. 세상 엄마치고 그처럼 열 받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나는 아이를 붙잡고 때리는 법을 가르쳤고, 약 올리는 방법도 전수해줬다. 하지만 내 딸들은 단 한 번도 누구를 때려 보지 못하고 자랐다. 얻어맞고, 울면서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그들의 사는 방법이었다. 온몸으로 기도하며 애원하는 방법 외엔 없었다. 내 딸들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내가 이루지 못한 삶을 살기를 말이다.
아이들은 곧 자라서 어른이 됐다. 두 딸은 이미 중년의 나이에 이르렀고, 막내도 곧 그 뒤를 따르려는 조짐이 있다. 아, 그런데 내 기도는 다 어디로 간 걸까?
함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때면 아이들은 영락없이 날 타박한다. 머리카락이 일찍 하얗게 세는 것도 엄마 닮았고, 혼자 속상하며 분을 삭이는 모습도 엄마 닮았단다. 가려운 피부를 갖게 된 것도 엄마 때문이란다. 안 좋은 것은 모두 나를 닮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 애비한테는 닮을게 있다더냐? 그러면 애비를 닮지 왜!”하며 악다구니를 해대지만, 장점을 닮지 못하고 나쁜 모습만을 골라서 닮은 서로의 내면을 살피며 결국엔 어이없어 한다.
“우리는 왜 엄마의 좋은 것은 하나도 안 닮았어요?” 엄마한테 좋은 것도 있느냐며 웃어넘기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것만은 닮아줬으면 하는 부분이 별로 없다는 것에 스스로 놀란다. 글을 쓰고 말을 하며 밥을 먹고 살지만, 늘 탁월하지 못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나이에 남들보다 탁월한 것 하나쯤은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하지만 엄마건 딸들이건 간에 각자 주어진 모습에 마음으로 감사드리고 노력하며 사는 것이, 곧 하느님께 드리는 최고의 기도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나는 내 딸들이 적어도 감사하는 마음만큼은 내가 가진 이상으로 갖기를 빈다.
결론은 늘 똑같다. 그러나 다시 모이면 또 닮은 타령을 하게 된다. 혹시 우리 딸들은 스스로의 안 좋은 모습을 자신들의 아이들이 또 그대로 닮을까봐 속으로 전전긍긍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부족한 존재이지, 모자라는 존재가 아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더욱 사랑스럽다.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믿음으로 다가가는 분이 계시다. 나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퉁퉁 붓는 것만은 제발 닮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가 완벽하게 닮아야 할 모델이 우리 가까이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 분이 누구인지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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