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미사가 끝나고 잔치가 시작되었다. 마지막이 된 그날, 그 파티에서 수갑 찬 손으로 초코파이를 먹으며 윤수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정이 누님, 나 생각했는데...처음으로 살고 싶었어요. 나 수갑 찬 몸으로라도 여기서 힘껏 사람들에게 내가 받았던 사랑 전하면서...평생 그렇게 피해자들 위해 기도하고 속죄하면서...나 그렇게라도 살아있으면 혹시 안될까, 염치없지만, 정말 염치없지만 나 처음 그런 생각했어요...’”
동명(同名)의 영화로도 개봉됐었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한 장면이다. 개봉 당시 영화는 원작 소설의 탄탄한 구성을 바탕으로 사형제도의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들춰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공지영의 원작 소설 역시 수년간에 걸친 작가의 취재와 교정사목 관계자들의 체험담에 근거한 것이어서, 소설·영화 모두 실화를 보는듯 생생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장면 둘
“10년 이상 생명이 단축된거 같아요. 너무 많이 울었어. 딸 아이 잃어서 울고, 범인 잡아서 울고, 현장검증 가서 울고....”
이달 초 국내 한 유력 일간지가 박스기사로 보도한 내용의 일부다. ‘끝나지 않은 유족들의 고통 ·분노’라는 제목을 단 이 기사는 살인범 강호순의 피해자 유족들이 충격으로 인한 불면증에 시달리며 생업을 잃고 술로 지샌다고 했다. 반면 옥중의 강호순은 자신에 관한 사이트에 관심을 보이며 유유자적하다고 일갈했다.
이 신문이 연쇄 살인범 강호순과 유영철의 사례를 들며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보도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때 마다 여러 통계자료 등을 들먹이며 사형제도의 필요성을 애둘러 강조했다. 앞서 언급한 기사에서도 그랬다. “유영철 정남규같이 선고 후 집행 안 하고 있는 사형수가 59명이라고 들었어요. 왜 그 사람들을 우리가 낸 세금으로 밥 먹여주나요?”라며 피해자 가족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쯤되면 유족들의 아픔과 억울함을 대변한다기 보다 “사형이 선고된 59명 사형수들을 당장 사형에 처하라”고 외치고 싶은 저의가 읽힌다.
흥미로운건 같은 날짜 외신면에 난 기사다. 살인 누명을 쓴 23세 이란 여성이 국제 사회의 비난과 자국 법정의 집행연기 결정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형이 집행됐다는 내용이다. 기사에선 사형집행의 부당함에 대한 지적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그녀의 재판이 전혀 공정하지 않았다”는 국제엠네스티와 유럽연합의 비난도 덧붙였다.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물론 명백한 살인혐의로 사형이 선고된 경우와 이란 여성의 경우를 똑같이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오판 가능성’은 사형 반대론자들의 핵심 주장 가운데 하나다. 권력에 의한 의도적인 오판이든, 재판관의 과오에 의한 것이든 ‘오판’이라는 점과 그 결과가 사형이라는 점에선 별반 다를게 없다. 생각해보라. 정권의 하수인이 된 법정에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죽임을 당했는지를.
유족들의 아픔과 고통은 우리 사회가 함께 나누어 져야 할 몫이다. 가해자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음으로써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다. 그래서 살인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과 생업의 어려움을 소상하게 알리되, 정부와 사회 각계 각층의 지원과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사회통합과 공동선을 위해서도 더욱 합당한 일이다. 그게 언론이 할 일이다.
모를리 없는 그들이 왜 그런 기사를 자꾸 써대는지... 개운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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