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이사야 42,3)
사제품을 받기 전, ‘내가 사제로 수품 될 자격이 있는가?’라는 ‘자격론’과 미래 직무 수행에 따른 ‘능력론’, ‘도피론’ 등 여러 물음 중 한두 가지를 두고 고민하지 않았던 부제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고민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마도 사제성소를 내 능력과 소질 안에서만 찾으려 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기야 지금도 사제생활을 하며 하느님 능력에 시선을 두기보다 제 능력과 소질 안에서 사제직을 바라보고 해석하려 하는데, 그 때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여러 물음 속에서 확실한 것, 나를 붙들어 줄만한 것이 필요했다. 이런 저런 성서 말씀을 찾아보았다. 출애굽의 모세에게 하신 “내가 네 힘이 되어주겠다”라는 말씀으로 시작해서 비슷한 종류의 말씀들을 뽑았다. 그 중 하나가 서품 성구인 이사야 42장 3절의 말씀이었다.
“갈대가 부러지면 이미 갈대가 아닌데, 초가 불꽃을 내지 못하면 이미 초가 아닌데, 그런 갈대와 초를 마저 꺾거나 끄지 않고 변함없이 기다려주시면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하시는 분이 내가 따르고자 하는 하느님이시구나!”
이사야 42장 3절은 미처 보지 못한 신관(神觀)을 열어 주었다. 이사야에게 드러나신 하느님은 있는 그대로의 나, 때로는 그보다 못한 나를 지켜보아주시면서 성실하게 구원활동을 펼치시는 하느님이셨다.
이 말씀을 주저없이 선택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사제품을 받고 난 뒤로도 지금까지 끊임없이 내가 만들어 세우고 있는 신관 안에서 허우적거릴 때마다 ‘하느님은 바로 이런 분이야’라며 나를 이끌어주는 등대가 되고 있다.
이사야 42장 3절의 말씀은 실은 내 내면을 너무나 잘 아시던 성령께서 평생의 과제로 남겨주신 말씀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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