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명령대로 노아가 온갖 살아 숨 쉬는 것들을 방주에 들어가게 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우리는 방주에 새터민을 태우는 심정으로 가정숙박체험을 진행했다. 탈북자 또는 북한이탈주민으로 불리는 새터민, 이 낯선 사람들을 함께 보듬는 일이라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지만 생명의 길을 닦는 마음으로 임했다.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와 가톨릭여성회관이 주관하여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며칠 전에 새터민 가정숙박체험 행사를 실시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에서는 통일부 하나원의 위탁을 받아 2004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고, 매달 각 교구에서 치르고 있다. 하나원이 있는 안성과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마산교구는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뒤늦게 시작한 셈이다.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은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은 후 하나원에서 3개월의 적응교육을 받고 각 지역에 배정되어 터를 잡게 되는데, 3개월 적응교육 중에 가정숙박체험도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처음으로 남한 가정을 접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꿈에 그리던 남한으로 온 그들에게는 대단한 설렘이 있는 교육시간이다. 국정원과 하나원에서 활동하는 다른 종교도 있지만, 가정숙박체험만은 천주교에서 종교를 초월하여 헌신적으로 해내고 있다.
그렇지만 숙박하게 될 봉사자 가정을 모집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민족화해위원이면서 가톨릭여성회관에서 새터민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 나로서야 새터민을 잘 이해한다지만, 일반신자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하다. 북한에서 탈출해 온 사람이라는 막연한 거부감에다 두려움마저 가지고 있다.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와 가톨릭여성회관이 그동안 새터민에 대한 홍보를 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지역에도 그런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에 소스라치며 놀라는 사람도 있다. 하나원 교육생 120명을 데려갈 봉사가정을 구하는 것이 산 넘어 산이었다. 행사전날까지도 인원이 확보되지 않아, 손이 발이 되도록 간청을 하고 달래고 하여 한 가정에 두세 사람씩 배정하는 방법으로 겨우 맞추어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떠밀려서 봉사가정으로 지원한 사람도 있지만, 가정숙박체험 봉사자들은 보통사람들이 아니다. 옛날과는 달리 요즘은 제 친지도 하룻밤 재워 보내기가 만만치 않은 세상이다. 하물며 생판 낯선 탈북자라니. 그들은 노아처럼 의롭고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새터민들이 같은 내 민족이고, 똑같이 존중받아야할 인간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또 다른 노아가 되어 새터민들을 생명이 있는 방주에 태웠다.
이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빈정거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어려움에 부딪치면서 좌절하는 마음이 여러 번 생겼다. 이래서야 다음에는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밀려들었다. 그런데, 우리를 돕기 위해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에서 파견된 수녀님은 우리 얼굴에 난감한 빛이 비칠 때마다 하느님께 맡기고 기도하면 잘 될 거라고 격려했다. 또 환영식에 참석하신 교구장 주교님께서는 새터민 한 사람 한 사람 천사를 대하듯이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이때부터는 일을 진행하는 사람들에게 실망보다는 힘이 생겼다. 봉사자들과 새터민이 짝을 지어 각 가정으로 떠나는 1일가족에게 주님의 은총이 내리기를 기원했다. 마침 가정의 달 오월에 이렇게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가족들이 진한 사랑을 나누고 행복하기를 빌었다.
과연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셨다.
1박2일의 체험을 끝내고 서로 손잡거나 팔짱끼고 환송회장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이야기 속에서 쏟아지는 진한 사랑을 느꼈다. 숙박가정봉사자들은 그사이 새터민들을 이해했고,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끌어안았다. 봉사자들은 어려움도 많았을 터인데, 지난 밤 행복하게 보낸 시간들을 이야기하며 그 일에 동참하게 된 것이 오히려 은총이라고 했다. 주님께서 자신을 불러주셨다고 감사했다. 새로운 ‘내 이웃’을 알게 되어 기뻐했다. 압록강을 건너고 중국 땅에서 전전긍긍 피해 다니다 제3국을 거쳐 사투를 벌이며 이 땅에 발 디딘 참혹한 시간들을 자신의 것처럼 아파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가정숙박체험을 진행한 사람들과 숙박가정봉사자들은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래며, 새터민들이 하나원 교육을 마무리하고 배정된 지역에서 터를 잡고 새로운 삶을 잘 가꾸게 되기를 진정으로 기원했다.
현재, 한국에는 1만5000명이 넘는 새터민들이 뿌리를 내리느라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갈 내 형제이며 내 이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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