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마스크 열풍이다. 여전히 꺾이지 않고 있는 신종인플루엔자A(H1N1)의 기세 덕분이다. 세계보건기구도 신종플루 전염 속도에 가속이 붙었다고 판단하고 경계경보를 강화했다. 한국에서는 사그라진 줄 알았던 기세는 새로 등장한 감염자들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엉뚱한 대상이 홍역을 앓고 있다. 신종플루 확산 소식이 쏟아지자 눈 깜짝할 사이에 돼지고기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졌다. 전염병이 돌 때마다 애꿎은 동물들만 혹사 또는 죽임을 당한다는 항의도 이어진다. 몇 해 전 조류인플루엔자(AI), 에볼라바이러스 전염 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수많은 재난의 대부분이 인간 욕심에서 시작된 그릇된 행태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폐해가 항생제 남용이다.
현대인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동은 제자리걸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복되는 오염으로 자연까지 그 생명력을 강탈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6월 5일 환경의 날을 맞아 항생제의 폐해에 대해 경각심을 달리해보자.
대안은 개개인의 사고의 변화와 그에 따른 ‘선택적 소비’다. 교회가 제시하는 창조의 영성은 그러한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
한때 SF영화 ‘매트릭스’를 패러디한 ‘미트릭스’(Meatrix) 시리즈가 눈길을 끌었다. 농가에서 사육되던 돼지 리오가 소 무피우스의 방문으로 공장화된 축산 산업의 폐해를 인식하고 이에 대항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었다.
이 플래시 애니메이션에서는 육류를 대량생산하기 위해 운영되는 축산 시스템이 얼마나 큰 모순을 안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무분별한 항생제 투여, 열악한 사육 환경. 사람이 만든 이러한 문제는 결국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결과로 나타난다.
최근 우리 주변에는 친환경, 저농약, 무농약, 무항생제 등의 홍보성 문구가 난무한다. 문제는 글자그대로 썩 믿기가 어렵다는 것. 특히 무항생제 돼지와 닭·소 등을 뜻하는 문구는 글자 그대로 항생제를 주지 않고 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무항생제 표시는 일정 기준치의 항생제 이하를 사용하면 허가되고 있다. 순수하게 무항생제 사육을 하는 농장은 아직 손꼽힐 정도로 적다. 무항생제에서 나아가 친환경 축산을 하는 농장은 그야말로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내놓은 조사에 따르면 축산용 항생제는 돼지사육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가축 사료에 섞어 쓸 수 있도록 허가된 항생제 중 절반 가까이가 식품 잔류 기준 없이 사용된다. 항생제 사료를 먹고 자란 가축 고기를 사람이 먹어도 되는 지 구분하는 기준조차 없다는 말이다. 지난해엔 기준치 1000배가 넘는 항생제를 남용한 사례도 고발된 바 있다. 가축을 키울 때 쓰는 성장촉진제와 호르몬제, 합성항균제 등의 사용 실태도 마찬가지다.
항생제는 사람 몸에 지속적으로 흡수될 때 더욱 큰 문제점을 낳는다. 다른 병이 생겨서 치료가 필요해도 항생제 내성으로 치료가 어렵게 된다. 장기간 남용하면 내성을 가진 치명적인 박테리아를 출현시킬 위험도 있다.
사람에게는 물론 가축과 자연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항생제 등의 화학약품 남용은 대량 생산과 소비를 지지하기 위해 생겨났고, 그 심각성은 더해진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까다롭게 굴면 세상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바로 이러한 의식이 더욱 심각한 문제다.
한 끼 밥상을 차리기 위해 매일같이 항생제 사용 유무를 확인하고, 탄소배출량을 계산하고, 원가와 유통경로까지 확인하긴 어렵다. 하지만 지금 바로 해결하지 않으면 오염된 먹을거리가 가져온 폐해를 해결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과 노력, 시간이 소모된다는 것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
다행히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교회 안팎에서 진행 중이다. 환경과 건강을 고려한 소비가 확산되면서, 무항생제와 동물보호제품 등을 사용한 소비 트렌드가 굵직굵직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 노력과 열정에 비해 일반 소비자들의 반응은 느린 편이다. 이에 대해 생태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의식의 변화가 더디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항생제의 폐해에서 빠져나오려면 가장 먼저 소비자들의 의사 결정 방향부터 바꿔야 한다. 지속적인 환경 보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변화다.
생태 전문가들은 “신종플루를 비롯한 각종 전염병의 공격에 우왕좌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식량 확보라는 미명 아래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방식으로 가축을 사육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인간과 자연에게 이로운 방식을 선택하는 결단과 소비 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불편하다. 항생제가 범벅된 고기가 식탁을 차지하고 있다. 항생제에 오염된 땅과 물이 썩어가고 있다. 오염된 먹을거리는 입을 즐겁게 할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생명과 자연을 끊임없이 망가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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