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5월
주님승천대축일을 하루 앞두고 우직한 소나무 하나가 스러졌다.
왜 좀 더 서 있지 못했을까. 그동안 버팀목 되어주던 뿌리가 약해져서일까.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바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 이 사회의 한 조각 땔감이 되길 원해서였을까.
일주일 뒤, 노무현은 성령강림대축일을 이틀 앞두고 우리 곁을 떠났다.
# 1985년 5월
그 날은 성령강림대축일이었다. 지금도 그 기쁨을 잊지 못한다. 세례를 받고 라파엘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났다. 참 행복했다. 그래서 매년 성령강림대축일이 다가오면 그날의 기쁨을 떠올리며 “늘 행복하게 살아야지” 혼잣말 하곤 한다.
노무현은 행복했을까. 신앙적 수사를 쏙 빼고 참 행복에 대해 이야기 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인간의 행복 욕심에는 객관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밥을 행복의 조건으로 볼 것이고, 명예와 권력의 성취를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같은 행복 조건이라도 그 정도의 차이 또한 천차만별이다. 하루 한 끼 밥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하루 네 번 밥상 앞에 앉아도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행복을 말하려면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친교”라고 했다. 그런데 이 친교의 성패는 방향성에 있다. 진정한 친교는 타인을 향해야 한다. 그럴 때 나 자신의 행복도 함께 온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친교가 충분하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노무현은 타인의 행복을 위해, 친교를 위해 온몸을 던졌다. 불꽃같은 삶이었다. 국민들이 모자랐던 친교를 뒤늦게 아쉬워하며 애도하는 이유다.
노무현의 실정(失政)을 말하기에 앞서, 이 친교의 가치만큼은 현 정부에 계승되어야 한다. “내 마음 알아달라”는 식의‘다가오라 형’ 설득은 이제 거둬들여야 한다. 먼저 허리 숙이고 다가가야 한다. 그래서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젠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라는 외침은 공허해진다.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뛰어난 지도자는 단지 뛰어난 재능만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가지 않는다. 훌륭한 지도자는 지도를 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들이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게 한다”고 했다.
# 1980년 5월
김수환 추기경이 담화문을 발표했다. “우리는 화합과 단결이 불가능해 보일 만큼 상호간에 불신과 대립, 미움과 단절로 치닫고 있습니다. 정부는 진지하게 국민에게 그간의 잘못에 대한 사과를 청하고 나라의 건설을 위해 호소하십시오. 국민은 반드시 이 호소를 따라서 정부에 진심으로 협조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성에는 단점도 없지 않지만 순박하고 불타는 애국심을 지녔으며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모두 자기 생명을 바쳐 이 나라를 지킬 정신을 가졌습니다.”
# 2009년 5월 29일
서울역 앞. ‘호산나’외치며 환영하다, 돌연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고 돌변했던 그 변덕스런 군중이 이제는 울고 있다.
눈앞으로 지나간다. “불쌍하다….” 누군가의 이 말에 한 젊은 엄마가 그렁그렁하던 눈물을 기어이 쏟아낸다.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기도 함께 운다. 옆에 있던 여고생 3명도 함께 울먹인다. 40대 중년 남성은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간신히 울음을 삼키고 있다.
코 허리가 매콤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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