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당신은 지금 어떠신가? 이 질문을 하나 던지고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평생 나무를 해 온 아버지가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주저앉았다. 아들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버지도 모른다. 왜 일어서질 못하는지. 빈 지게도 무거운 날이 바로 오늘인지, 그건 아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젊은 날 무거운 나무를 지고 높은 산을 오르내리던 그 활기찬 아버지는 당신에게도 빈 지게가 무거운 날이 찾아오리란 것을 결코 몰랐다.
대개 그렇게 스스로 자신에게 굴복하는 날은 ‘아직은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시기에 찾아온다. ‘벌써?’라며 고개를 갸웃거릴 때 어느 날 안개처럼 몰려오는 것이다.
아들이 보기엔 늘 즐겁게 산을 오르며 나무를 하는 것 같았지만, 아버지는 육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이겨내며 때론 산에 오르고 싶지 않은 나날들을 견뎌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기 위해 고독하게 입술을 깨물며 산에 올라 나무를 했을 것이다. 도저히 오르기 힘든 날에도 참고 올랐을 것이다.
“왜 그러세요?” 누구에게나 이런 질문을 받는 날이 온다. 자, 당신이라면 이 질문에 뭐라고 답할 것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도 나무꾼이 산에 오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비록 평지를 걷고 평지 위에서 살아가지만, 그것은 나무꾼이 높은 산에 오르는 일처럼 험난한 장애를 넘으며 사는 삶인지도 모른다.
어린 날의 나는 욕심이 많았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그 욕심은 나의 미래에 대한 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머니가 치마를 사 준다고 하면, 난 원피스를 사 달라고 졸랐다. 연필을 사 준다고 하면 필통까지 새로 사 달라고 보챘다. 고등학교 시절 부산으로 전학을 가게 되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로 보내 달라고 떼를 썼고,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을 하자마자 그 시절 턱도 없던 외국 유학을 보내달라고 억지를 썼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를 건드리는 일을 무서워 하셨다.
내가 고집을 부릴 때마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오르지도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 섭섭했다. 신분의 차이를 여실히 나타내는 그 속담을, 나는 용납할 수 없었다. 과연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면 안 되는 것일까. 그것은 죄악인가, 아니면 불손인가. 나는 ‘쳐다보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무형의 자산으로 키워야 할 꿈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대학생이 되면서 구체화됐고, 내게도 ‘어머니’란 이름이 붙을 때 즈음 더욱 확실해졌다.
어머니는 내게 나무에 오르지 말라고 가르쳤지만, 어머니 자신은 오르지 못할 나무 없이 계속해서 오르고 오르다가 결국은 떨어져 찰과상을 입고 발목을 다치고 피를 흘렸을 것이다. 그 아픔을 겪은 어머니는 내가 아픔을 치르게 될 일을 막아주기 위해 안전한 길로 가라고 떠밀었는지 모른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삶이 아니라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려 애썼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교육은 오르다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한 사랑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치는 기회를 주는 교육도 사랑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자식을 낳고, 어머니가 돼서야 나도 갈등에 사로잡혔다. 내가 겪은 도전의 삶은 험난했다. 그것을 내 혈육에게 이어주는 것은 위험했고 가능한 멀리하고 싶었다. 안전한 길이 있다면 그것을 가르치고 싶었다. 불안하고 언제 낙뢰가 떨어질지 모르는 길로 어떻게 자식을 등 떠밀겠는가.
우리 모두는 나무에 오르는 삶을 산다. 위험을 겪지 않고 안정적인 삶에 도달한 이는 아무도 없다. 나름대로 위태롭게 나무에 오르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자기 분야에서 우뚝 선 사람들의 사연을 살펴보면 영락없이 나무타기의 도전이 있었다. 도저히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다가 오르는 방법을 터득하고, 그 방법대로 오르다가 몇 번이고 떨어져 다치고 절룩이다가, 그 다친 발로 다시 오르는 의지를 키운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도 많다. 가장 큰 실패를 겪은 사람들을 나열해 보면, 그 중에서 가장 큰 성공을 한 사람들의 이름을 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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