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아이들과 함께 권정생 선생의 ‘몽실 언니’를 다시 읽었습니다. 오래전 몽실 언니를 처음 읽으며 몇 번씩 책을 덮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슬퍼 싫었습니다. 해방과 6.25전쟁 그리고 극심한 이념대립과 갈등 속에 그렇게 아프게 아프게 바보같이 살아간 몽실 언니 모습이 너무 슬퍼 싫었습니다. 읽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그 슬픔이 편안해짐을 느낍니다. 책의 끝 무렵, 난리 통에 태어난 아이라 하여 ‘난남이’라 이름 지은 결핵 환자 동생에게 닭찜을 가져다주는 몽실 언니. 그리고 갓난아기 때부터 생쌀을 입으로 씹어 죽 끓여 먹여준 엄마 같은 언니의 절룩이며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 동생 난남이는 끝내 웁니다.
아버지가 그를 버리고, 어머니가 버리고, 이웃들이 버리고, 세상의 모든 칼과 창이 괴롭힌 몽실 언니를 보며. 그리고 다시 구두 수선쟁이 꼽추 남편과 결혼해 기덕이, 기복이 남매의 엄마 되어 또 하나 짐을 짊어진 언니의 뒷모습을 보며 난남이는 입속말로 기도처럼 그 이름을 부릅니다.
“언니…. 몽실 언니….”
난남이의 기도입니다.
온 국민이 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며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대립과 갈등이 난무하는 모습 속에. 또 가난과 슬픔을 통한 배움보다는 부유함과 성공을 위한 배움만이 일상이 된 오늘날 모습 속에 어쩐 일인지 몽실 언니의 ‘슬픔’이 제게 힘이 됩니다.
그날 저녁 아이들과 함께 집 앞 논두렁길을 걸었습니다. 막 심어 놓은 어린 모 사이를 아이들과 걸었습니다. 아이들은 나무 막대기를 들고 놀다 이내 재미없다고 던지고는 다른 놀이를 찾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혼자 웃으며 ‘인생은 원래 심심한거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입속말로 이야기합니다.
‘얘들아, 때로는 슬픔도 배움이 되고 큰 힘이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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