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떡 드세요. 떡, 떡 사왔어요.” 연구실에 들어서자마자 난데없이 커다란 떡 상자 하나를 들이밀면서 웬 떡을 먹으라고 다그치는 대학원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글이 좋던데요, 그런데 제목이 가슴에 안 와 닿는데요”라는 어느 잡지사 편집위원의 어이없는 전화를 받고는,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렇게 거침없이 말하도록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무거워진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데, “지금 영결미사 중이요. 세상을 떠난 L시인을 생각하면서 서로 용서합시다”라는 K교수의 컬러 문자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세상을 떠난 L(안젤로)시인이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정중하고 엄숙하게 거행되는 ‘영결미사’ 중에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런 메시지를 보낸 것일까 라는 생각을 또 하게 되었다. 이들의 해괴한 언행을 필자가 ‘지금도’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은 앞의 두 여성이 철없는 십대 소녀들이 아니라 사오십대의 직장인들이고, K교수 역시 자신의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위치에 있는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소할 수만은 없는 우울한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오지영 신부가 번역한 토마스 머튼의 「영적 일기-요나의 표징」을 감동 깊게 읽었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요나서’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고있는 ‘평화’를 상징하기보다는 한 곳에 죽치고 앉아있기를 좋아하며 어리석고 아둔한 성격 등 특이하게도 부정적인 뜻을 지닌 ‘비둘기’라는 의미의 ‘요나’(호세 7,11)의 예언서에 해당하는 ‘요나서’는 전부 다섯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니네베에 말씀을 전하라는 하느님의 분부를 저버리고 타르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치는 요나(1장,1-3절), ②바다에 내던져 폭풍에 휩싸이자 하느님을 부르는 요나(1장,4-16절), ③큰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낮밤을 보낸 후 육지로 올라오게 된 요나(2장), ④ 하느님의 두 번째 분부를 따라 니네베로 가서 말씀을 선포한 요나와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와 참회 그리고 이들에게 내리려던 재앙을 거두어들인 하느님의 자애(3장), ⑤니네베에 베푼 하느님의 자애를 못마땅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뙤약볕을 피할 수 있었던 아주까리가 시들어버리자 투덜거리는 요나와 하느님의 가르침(4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자애의 참뜻을 깨우쳐 주신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대학원생이나 편집위원이나 K교수가 ‘이 시대의 니네베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낮의 뙤약볕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요나에게 하느님께서 아주까리를 자라게 하여 그늘을 드리워주지만, 그 아주까리가 말라 죽어버리자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라고 불평하는 요나에게 하느님께서 타이르신 ‘말씀’을 오랫동안 묵상하였다.
“‘아주까리 때문에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그가 ‘옳다 뿐입니까? 화가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 하고 대답하니,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요나서,4장 9-11절). “불행하여라, 피의 성읍! 온통 거짓뿐이고 노획물로 가득한데 노략질을 그치지 않는다”(나훔서, 3장 1절)라는 하느님의 진노와 경고에 회개와 참회를 했던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요나서, 3장 3절)으로 당시로서는 거대한 대도시였다.
이러한 거대한 대도시에 살면서도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니네베 사람들’―그런 사람들이 어찌 필자에게 해괴한 언행과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람들뿐이겠는가?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와 국내외 언론의 시시비비를 떠나 우리 모두가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이 시대의 니네베 사람들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구상 선생의 시 ‘기도’를 다시 읽어본다.
‘저들은 저들이 하는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 이들도 이들이 하는 바를 / 모르고 있습니다 // 이 눈먼 싸움에서 / 우리를 건져 주소서 // 두 이레 강아지만큼이라도 / 마음의 눈을 뜨게 하소서’
윤호병 교수(빈첸시오·추계예술대학교 문학부 문예창작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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