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필립 1,21)
2000년. 부제품을 앞두고 피정에서 나름 진지한 고민 속에서 이 구절을 만났습니다.
‘나의 삶을 %로 나눌 수 있다면 과연 내가 주님께 드리고 있는 몫은 얼마나 될까?’로 시작되는 묵상은 보잘 것 없는 인생을 전환하며 이 말씀의 씨앗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 아래 저는 신부가 되었고, 9년이 지났습니다.
서품모토를 정할 때는 눈에 보일 듯 그리스도 안에 항상 머무는 것이 이 말씀의 뜻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서품 후 그리스도조차 잊게 만드는 바쁜 시간들이 싫어 끊임없이 멈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동안 이 구절의 모습은 새롭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사제로 산다는 것이 눈 앞의 현실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유일한 희망의 조각일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습니다. 사제가 되었음에도 내 신앙을 확인하고 싶어 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씀 안에 머무는 것이 나의 신앙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 제 앞엔 ‘농아인,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소년소녀가장…’이라는 세상이 붙여준 한계의 이름표를 가진 가족들이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장애가 극복되기를 바라는 기도가 아니라 그 장애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통해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압니다.
그들에게 장애란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하는 세상의 핑계이고, 이미 없는 그것들을 제외하면 그들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미 부족하고 흠이 많은 사람입니다. 앞으로 그것은 더 커져만 갈 겁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내 숨소리조차 그리스도의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살겠습니다.
정호 신부〈부산교구 사회사목국 부국장·2001년 서품〉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