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장충성당을 잊을 수가 없다. 지난해 4월, 거기서 주일미사를 바치는 동안 감동적인 분위기와 묘한 분위기에 싸였던 때를 떠올리니 다시 가슴이 벌렁거린다. 그곳 사람들이 우리가 부르는 똑같은 성가를 불러서 감동했고, 그 소리가 지나치게 씩씩하고 우렁차서 묘했다. 성전을 꽉 매운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 박수에 감동했고, 전례에 따르는 일사불란한 태도에 묘한 생각이 들었다.
마산교구에서는 장충성당 안에 있는 콩우유공장에 매달 5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석 달에 한 번씩 중국에서 1500만 원의 콩우유 원료를 구입하여 그곳으로 보낸다. 마산교구의 후원자들이 북한 어린이들의 영양공급을 소망하며 낸 후원금으로 이루어지는 사업이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후원자들의 노력이다.
마산교구에서 매달 500만 원을 모으는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후원자를 모집하러 다니는 민족화해위원장 신부님과 사무국의 땀 흘린 노력에다 거기에 호응하는 후원자들의 사랑으로 만들어진다. 나는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를 대신해서 이 소중한 일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고, 콩우유공장에서 생산되는 과정을 보았다. 우리가 보낸 원료로 만들어진 영양가 많은 따끈한 콩우유를 마셔 보면서 감동했고, 그날은 콩우유를 마시는 어린이를 만나지 못해서 묘한 생각이 들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는 달, 6월이 다 지나고 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전후하여 9일기도를 바치면서 보낸 시간 속에서 평양에서의 일들이 자꾸 떠올랐다. 현 정부에 와서는 남북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으니 평양이 자꾸만 멀리 느껴졌다. 6.15와 6.25를 기념하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 사회는 더욱 분열되고 남남갈등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하여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그리고 나의 내심에서 감동과 묘한 생각이 엎치락뒤치락 일어나는 갈등 속에 놓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정신을 꿰뚫어 굽혀지지 않는 생각은 우리 교회는 민족이 화해하고 일치하는 일에 매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복음정신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른 뺨을 치거든 왼뺨을 내놓으라고 하셨고,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라고도 하셨다.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함께 이천 걸음을 가주라고 하셨고,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말라고도 하셨다.
요사이 만나는 사람들과 북측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참 곤혹스럽다. 지난해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으로 온 나라가 놀라고, 금강산 관광의 셔터가 내려지면서 그나마 소통되던 남북관계에 먹구름이 찼다. 올해 들어서는 핵실험 문제나 개성공단 사태 등등 워낙 심각히 드러난 상황에 어느 누구라도 예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북측과 관계된 일이면 막무가내로 분노를 표시한다 해도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계산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남과 북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 하더라도, 세상의 저울로 달아지지 않는 관계를 유지해야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교회는 화해를 위한 확고한 입장에 서야 한다. 우리 교회가 신앙을 모르고 살아온 북측의 사람들과 일치를 이루는 일은 요원하고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도 이루게 하시는 하느님이시기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로써 간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기도하면 들어주시는 아버지이시기에 온 교회가 우리 민족의 상처를 아물게 해달라며 기도를 하고 있다.
우리 교회는 곤경에 처한 북한 동포들을 위해 식량지원이나 의료지원 등의 대북지원을 하고 있으며, 남한에 입국하여 정착하려는 새터민을 위한 지원도 하고 있다. 또한 북한을 떠나 여러 나라를 떠도는 북한 난민의 생존과 인권을 위한 지원도 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민족화해위원회를 통한 이러한 일련의 지원이 부족하지만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여기에 더 보태어, 우리 교회 전체가 진정으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마음을 모으도록 염원해 본다.
9일기도를 바친 기간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평화통일을 이루고 이 땅에 주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는 예수성심의 사랑으로 화해와 일치의 기도가 이어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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