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해가 저물어 갑니다. 마음 속 메아리는 강물이 되어 지난 일년의 골을 타고 흐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낮추는 일이라고 수없이 되뇌었으나 마음 속에 내가 너무 많아 끝끝내 낮추지 못한 순간들이 가슴에 화인(火印)으로 남겨졌습니다.
지는 낙엽을 고스란히 받아들고 땅에 떨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온유와 사랑의 싹 틔울 수 있음을 알면서도 고집과 아집 투성이인 나는 뿌린 씨도 없이, 흘린 땀도 없이 열매만 탐했습니다. 고요가 떠나간 마음은 장터 같아서 내 이웃의 아픈 소리 듣지 못하고 하느님 당신의 쓴소리에도 귀먹었습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당신을 배반하면서도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하며 발뺌하는 뻔뻔한 이 죄인을 용서하십시오.
청년 시절에 읽었던 오스카 와일드의 ‘옥중기’에 보면 나오는 ‘도미네 논섬 디그너스’라는 말을 기억합니다. “주님, 우리는 높은 자가 아닙니다”라는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 우리가 살아가는 요즘 세상에는 그렇게도 높은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조금씩만 양보하고 스스로를 낮추며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면 비로소 평화와 사랑이 가득할텐데요.
내 가정과 이웃을 뒤돌아보게 하는 어느 날입니다.
김필수(요한·인천교구 용현5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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