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친구들끼리 서로 별명을 지어 주는 것이 유행이었다. 별명은 자신감을 뺏는 표현이 아닌, 살짝 유머를 곁들여 조금 신분상승을 시켜주는 것이 친구들끼리의 예의였다.
친구들이 내게 지어 준 별명은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이었다. 그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세계적인 인기스타였고, 영부인 재클린 역시 그랬다. 친구들은 나를 ‘숙명 재클린’이란 별명으로 부르곤 했다.
나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마치 내가 세계적인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미모가 맘에 들었던 탓이다. 나는 은근히 그 별명을 즐겼다. 재클린 사진을 들고 그녀와 같은 헤어스타일을 따라 했으며 그녀처럼 멋을 부렸다. ‘그래, 그럴 듯 하군….’ 나는 의기양양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로마의 휴일’이란 영화를 보게 됐다. 그리고 오드리 햅번에게 꽂혔다. 더 이상 재클린이 되고 싶지 않았다. 햅번처럼 산뜻하고 싱그럽고 귀엽고 아름다운 여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 햅번이 되자. 햅번이 돼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자. 모든 남자들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겠지. 하하하. 신나라.’
그때부터 나는 친구들에게 햅번으로 별명을 바꿔달라고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실제보다 거리가 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친구들에게 김밥과 순대, 아이스케키를 사다 바치고, 당시에는 엄청나게 비쌌던 자장면을 사기도 했다. 그래도 안 되면 용돈의 마지막 장을 내밀었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내게 얻어먹을 만큼 얻어먹고도 결코 별명을 바꿔주지 않았다. 나는 화가 났고, 우울했다. 친구들에게 불만이 쌓여갔다. ‘그러려면 얻어먹지나 말 것이지….’ 나는 늘 토라져 있었다.
가을학기가 시작됐다. 나무들이 이제 겨우 붉은 물을 약간씩 머금은 10월이었다. 햇살 투명한 어느 날, 별명대장이 나를 불렀다. 별명식을 거행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세상을 다 얻은 듯 황홀해졌다. ‘이제야 말로 햅번이 되는구나!’ 나는 햅번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옷을 입고 그 별명식에 갔다.
별명대장이 연설을 시작했다. ‘오늘 신달자의 별명식을 거행하겠다. 달자가 ‘숙명 재클린’을 버리고 ‘햅번’이 되겠다 했을 때, 우리는 분명히 가당찮다고 말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보니 우리가 달자에게 얻어먹은 것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달자 뜻에 따라 별명을 바꿔 주겠다. 그러나 얻어먹은 것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리 생각해도, 햅번이란 별명은 무리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고민 끝에 좋은 생각을 해냈다. 바로 이것이다.’
별명대장이 긴 종이를 폈다. 그 종이에는 ‘오드리 될뻔’이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찡그렸고 친구들은 박장대소했다. 그렇게 내 별명식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될뻔’ 보다는 ‘재클린’이 더 나은 것 같아 계속해서 별명으로 갈등을 해야 했다.
우리가 졸업을 하던 1965년. 그 시절 취직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될 뻔하다가 안 되고, 될 뻔하다가 안 되곤 했다. 취직을 하고 돈을 벌어야 좋은 시인도 될 것 같았다. 너무 구지레한 삶은 싫었고, 적어도 내 자존심을 지키는 생활을 하고 싶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신을 지키는 삶. 나는 별명대장에게 ‘너희들이 별명을 이렇게 지어놔서 내가 취직이 될 뻔하다가 매번 실패한다’고 떼를 썼다. 그러나 별명대장은 다 내 팔자 탓이라고 했다. 내가 원해서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나는 말하고, 연기하고, 쓰고, 그리고 자지러지게 열정적인 혼을 갖고 싶었다. 늘 남들의 시선을 받아 박수를 받는 그런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했다. 팔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엔 물릴 정도로 비극적인 무대의 주인공이 됐고, 내 삶의 모든 일상들도 생각해보면 ‘연극’이요 ‘영화’였던 것이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꼭 별명처럼 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마음만이라도 그렇게 닮고 싶은 사람을 향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젊은 날의 그런 추억은 지금도 활짝 웃으며 아침을 맞게 한다. 대학시절은 싱그럽고 건강했다.
내 친구 별명대장은 지금 캐나다에 산다. 결혼 후 30년이 지난 어느 날. 내가 이미 할머니가 된 후였다. 내 얼굴이 난 신문을 본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야! 너 이제 햅번으로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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