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자들은 물론이고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존엄사’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보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교회의 노력이 요청되고 있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위원장이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존엄사 허용 관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8.3%가 이른바 존엄사 허용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신자 가운데 87.2%도 존엄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조사돼 생명윤리를 둘러싼 교회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과 큰 차별성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록 국내 성인 남·여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여서 한계가 있는 통계로도 볼 수 있지만 이 조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수치는 그간 교회가 생명문제를 둘러싸고 교회 안팎으로 기울여온 각종 노력들이 허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없지 않다.
특히 존엄사가 필요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가운데 43.8%가 환자의 고통 경감과 가족의 정신적?경제적 부담(28.3%)을 꼽아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개인주의와 경제제일주의가 신앙생활마저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언뜻 보기에 합리적인 선택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생명에 대한 무지와 무감각을 확인시켜주는 이러한 현실은 ‘존엄사’라는 용어가 환자가 고통 없이 품위를 지니고 맞이하는 죽음이라는 미화된 이미지를 풍기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안락사’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교회는 이 용어로 안락사를 제도화하려는 어떠한 움직임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오고 있다. 사람이 만든 법으로 인간 존엄과 생명이 송두리째 빼앗기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교회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보이고 있는, ‘존엄사’라는 미명 아래 하느님께서 주신 고귀한 인간 생명에 대한 침해를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마저 별다른 의식 없이 이러한 사회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은 곧 죽음의 문화, 악의 구조를 확산시키데 일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직 하느님께만 맡겨져 있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인간 손으로 끝낼 수도 있다는 논리와 주장은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일임을 명심하고, 일상에서 악과 맞설 수 있는 깨어있는 자세를 가다듬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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