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망년회(忘年會)가 우리나라를 망(亡)칠것이라는 얘기가 심심치않게 우리 사회를 풍미한 적이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주 잘 나가던」때 나온 말이다. 경기가 좋았던 만큼 지난 수십년동안 우리나라 망년회 문화는 세계적으로 그 이름이 알려질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에 주재하던 어떤 외국인은 한국 근무중 가장 인상깊었던 때를 매년말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망년회로 꼽을 정도였으니까.
그 외국인이 국내 한 일간신문에 기고한 칼럼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옮겨보면 대강 이런 내용이다.
『한국사람들은 참으로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월요일이면 속 푼다고 시작하는 한잔이 일주일 내내 한잔으로 이어진다. 화요일은 일이 안풀려 화가 나서 한잔하고 수요일은 일주일에 중간이므로 한잔이 필요하고 목요일은 목이 컬컬해서 한잔, 금요일은 토요일이 눈앞에 보이니까 한잔, 토요일은 주말이므로 한잔한다. 심지어 건강을 위해 산에 갔다 오는 일요일까지도 한잔하는데 그 이유란 것이 「그냥 헤어지기 섭섭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다음 말이 걸작이다. 『한국 사람들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마시고도 대개 생명이 「무사하고」사우나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비해 일 처리 역시 대부분 아무 탈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은 뛰어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이 한국적 음주문화가 연말이면 극에 달했고 이 때문에 매해 연말은 한국 근무중 가장 「괴로운 때」이기도 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소위 망년회라고 이름하는 연말의 한국모임을 표현한 그의 증언은 다음에서 극치를 이룬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마치 망년회를 하기 위해 일년을 사는 것 같다」
그의 이 말을 뒷받침하듯 한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술 소비량이 두번째인가 세번째로 많은 나라라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양주 역시 세계에서 두번째인가 하는 수입국가라고 소개된 적이 있었다.
불과 1년 조금 전까지도 12월달 들어서면 호텔 식당 자리 하나 얻기가 쉽지 않았다. 이름께나 나있는 식당 역시 방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외형적으로 볼때 풍요가 질퍽거리는 그런 풍토속에서 우리는 국제 사회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이른바 IMF체제를 맞았다. 불과 지난해 12월 3일의 일이었다. 1년여 전의 사건이 아주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 1년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어렵고 힘겨운 시간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충격」과 「당황」그리고 「불안」속에서 엉겁결에 맞아야 했던 지난해의 연말에 비해 올 12월은 다소 여유를 되찾는 것 같아 우선은 기분이 좋다. 우리 대통령이 계속 장담해온 것처럼 이대로 나가면 내년말 쯤이면 IMF 상황 전의 우리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미국의 언론 역시 우리의 이 보라빛 희망에 조금씩 부채질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또다른 진단도 있다. 내면적으로 변한 것이 없는데 내년에 IMF사태를 졸업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만아니라 극복한다 해도 예전의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얘기라는 것이다. 구라파 쪽의 시각이 대부분 그렇다.
어느 쪽이 정답이든지 간에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결코 과거의 우리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설사 IMF를 졸업한다고 해도 말이다.
어쨋든 최근들어 극도로 위축된 내수를 풀어 경기부양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의미에서 필요한 돈은 써야한다고 말들을 한다. 맞는 말인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조금씩 되살아난다는 올 연말 망년회(송년회) 모임도 긍정적인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우리 교회의 송년회 역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은 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기엔 하루 한끼 밥값이 없어 고통중에 있는 우리의 이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줄인다 해도 속한 단체별로, 친한 끼리별로 따져봐도 올해 성인 신자 한 사람당 족히 서너번 이상은 송년회를 치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각 단체별 송년회에 모두 초대 받아야 하는 본당 신부님들 역시 보통 고역이 아닐 것이다.
만일 우리 신자들이 개인별 송년회의 반을 줄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반의 「한잔」값을 이웃을 위해 나누기를 한다면 아마도 그 사랑은 엄청날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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