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9년, 포교성성에서 중국으로 떠나는 선교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침을 주었다. 『프랑스나 스페인, 혹은 이탈리아 등 유럽의 어떤 나라들을 중국인들에게 그대로 옮겨 놓으려고 한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런 것이 아닌 신앙을 가져다 주십시오. 어떤 민족이든 그 민족이 갖고 있는 예절이나 관습이 전혀 사악한 것이 아니라면 신앙은 결코 그것을 거부하거나 파괴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들을 보존하고 보호하기를 원합니다』
이처럼 교회는 어느 특정한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그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깨닫고 배우고 익히며 그들을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맞게끔 발전시켜 나가도록 가르쳤다. 불행하게도 교회의 선교역사에 있어 이러한 면이 간과된 채 그저 서양의 문화나 관습을 그대로 전하고 받아들이다 보니 오늘날 신앙과 현실의 괴리감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이 적지 않은 듯하다.
초기 한국천주교회가 한국사회에 공헌한 것을 크게 두 가지 든다면 인권존중과 한글의 발전이다. 당시 지배계층은 일종의 특권의식을 지니고 한문을 사용했으며, 배우지 못하고 배울 기회조차 없는 일반 민중들이 천시받던 한글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우리 신앙선조들은 지식층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중국말 교회서적을 우리말로 옮기고, 복음의 메시지를 한국적 상황과 심성에 맞도록 한국적인 교리서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무지하다는 이들도 그 어려운 교리를 깨우치고, 그 교리 때문에 목숨마저 바치지 않았던가?
특기할 일은 1854년부터 한글과 관련된 사전편찬을 이 땅에서 맨처음 시작하여 우리말의 체계적인 정리와 발전에 이바지한 것이다. 비록 병인박해로 인해 사전원고들이 압수되어 불태워졌지만 이런 노력은 계속되어 1880년 한불자전을, 1881년 한어문전을 출판 할 수 있었다. 이 사전들은 우리말, 글의 과학적 연구의 씨를 뿌렸고 그 뒤에 여러 사전들과 말본책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1864년 베르뇌 장 주교님은 모든 교회의 평신도 지도자인 회장들에게 편지를 보내, 신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칠 것을 명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우리 말의 발전을 위한 노력은 매우 다양했다. 이런 면에서 박해시대의 한국천주교회는 한국민족을 위해 한글문화 발전을 촉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것 역시 토착화의 한 과정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토착화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런 만큼 토착화가 이루어져야 할 분야는 매우 다양하기만 하다. 그 중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분야로 우리의 말, 한글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들고 싶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 바로 육화의 신비가 토착화의 근거가 되기에 이 점은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사실 토착화의 첫걸음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를 그 나라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선조들의 예지가 더욱 놀랍게 느껴지며, 한편 부끄럽기만 하다. 그분들이 그토록 노력했던 분야를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우리 뿐만이랴? 대다수 국민들이 한글의 중요성을 외면한 채 너무나 당연히 외래어를 쉽게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외래어로 인해, 이러다간 우리말이라고는 토씨 정도만 남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든다. 물로 외래어를 그대로 쓴다면 우선 편하기는 하다. 그러나 조금 깊이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다른 나라에서는 가능한 한 자신들의 언어로 바꿔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외에도 요즈음 널리 확산되고 있는, 우리 어법에 어긋나는 호칭들도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남편」을 언제까지「오빠」라고 부고 있을것인가?
우리말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우리는 신앙선조들이 한글을 발전시키고 보급시킨 전통과 유산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가 이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 교회는 좀 더 토착화가 된 교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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