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모 방송국 텔레비전연속극에서 방송돼 공전의 히트를 친 가요 가운데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었다. 물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 가요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 가요는 당시 사람들의 마음과 일치했고 시대상을 대변했다고 할 수 있다.
자기망각―불행시작
이 가요의 묘미는 사람의 마음 저변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데서 찾을 수 있다. 근래 유행해 온 대부분의 가요가 인생을 논하던, 사랑을 논하든 구름잡는 내용이거나 안개가 잔뜩 낀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반해 이 가요는 인간 삶의 모양새를 직설적으로 노래했고 그만큼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오죽했으면 그 옛날 철인(哲人)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을까.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불행은 자기 자신을 모름으로 인해 발생되어 온 것이라 생각된다. 역사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정치적으로 볼때 이 불행의 파장은 훨씬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정치사에서도 「내가 나를 모름」으로 해서 민족이 겪어온 불행 역시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자신에 대한 「불감증」에서 출발하고 있는 이 불행은 요지음의 정치마당에 비춰보면 마치 한편의 촌극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정치권의 자기 망각
국민이 세금으로 바친 돈 이른바 혈세(血稅)를 녹으로 먹고 사는 대표적 사람들인 일부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의 행태는 자기 자신을 망각한 현실의 최고점(最高點),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터놓고 말하자면 국회의원들로 대변되는 거물급 정치인들의 경우 자기자신을 모르는데 있어 대표 주자들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 정치의 비극은 집권당이건 야당이건 그들의 행적을 논할 때 떠오르는 단골메뉴는 언제나 「돈」이라는 사실이다.
정치무대 전면에 서 있을 때나 뒤편에서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자리할 때나 액수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돈」은 언제나 이들 정치인들의 「동반자」였다는 사실이다.
「돈」자체가 나쁠 수는 없다. 일한만큼 정직하게, 땀흘린 만큼 정당하게 수고료를 받는 것이 인생사의 정도(正道)라면 거물급 정치인들이 받아야 할 수고료 역시 그 정도에서 벗어나서는 안될 것이다. 문제는 땀 흘리지 않고 획득하는 수고료인 것이다.
이 모두 정치인들이, 공무원들이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데서 파생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그들은 국민의 눈과 입이 되고 귀가 되고 발이 되어 큰 일 하라고 국민들이 뽑아준 사람들이다. 크고 작은 각종 이권에 무차별 개입, 뒷돈 챙기라고 달아준 금배지가 아니다. 공무원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우리 국민 대다수가 몸서리치며 겪고 있는 「IMF의 비극」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를 점치곤 한다. 다행스럽게도 김대중 대통령은 내년도 말쯤 우리나라가 IMF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을 내린 바 있다.
IMF비극 언제까지
그러나 또 많은 사람들은 정반대의 진단을 하기도 한다. 짧게는 향후 5년, 길게는 10년이 지나도록 우리나라는 결코 IMF의 늪에서 헤쳐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비관적 진단의 근거는 바로 하나, 정치권과 정부조직의 변함없는 구조악이다.
관료들과 정치인 그리고 재계가 한 팀이 되어 만들어낸 이 피폐한 국가운영의 잔영들이 지금까지도 결코 줄어들거나 없어지지 않고 있는 한 IMF극복은 언감생심이라는 것이다.
분수지켜야 푼수 잠재워
우리나라의 「IMF비극」은 공무원들이, 정치인들이, 나아가「힘깨나 쓴다」는 재벌들이 『내가 나를 모르는데서 출발한 비극』이다.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막중하고 중차대한 위치에서 국가의 존망을 두 손안에 쥐고 있는 이들 삼총사들이 진정으로 「개심」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아울러 알게 모르게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있는 우리 국민 대다수의 「푼수」끼도 함께 잠재워야만 한다.
똑똑한 국민, 정직한 국민이 있으면 똑똑하고 정직한 정치인, 공무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자신을 정확히 알고 「분수」를 지킨다면 정치권과 재계의 「푼수」쯤은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때마침 위령성월이 시작됐다. 일년의 삶을 마무리하면서 죽음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위령성월, 그러나 내가 나를 모르고서야 이다음 하느님대전에 나 자신을 대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생각해보면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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