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초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뉴스의 하나가 마산에 거주하는 초등학생 강군이 손가락을 잘린 사건이었다.
이것을 도둑놈이 잘랐다 하였다가 강군의 아버지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아들의 손가락을 잘랐다는 것이 알려지자 강군의 아버지를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라 보도하고 수감하였으며 불쌍한 강군을 위하여 마산에서 서울에서 성금을 모아 보냈고 심지어 대통령께서는 금일봉을 하사하시었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강군 사건이 한창이었을 때 파주에서 여학생 3명이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언론에 보도하기는 본드를 흡입한 여학생 3명이 투신하여 죽었다는 것이고 더 이상 번거롭지 않게 보도는 일회로 끝나고 말았다.
이 두 사건은 아무 연관이 없다. 그러나 이들은 중요한 대조를 이룬다.
하나는 죽음이고 하나는 손가락을 자른 것이다. 하나는 여학생이고 하나는 남학생이다. 하나는 복수의 죽음이고 하나는 한 사람의 사건이다.
하나는 조용히 보도되었고 하나는 요란하게 보도되었다. 사건으로 말하자면 3명의 여학생의 자살은 그리 쉽게 지나쳐 버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회학자 둘켐에 의하면 자살이란 죽은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죽게한 사회의 문제라 하였다. 사람이 자기가 거주하는 사회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느꼈을 때 자살을 하는 것으로 사회가 사람을 죽게 만든 것이라 한다. 여학생이면 굴러가는 말똥만 보아도 웃음이 나는 세상을 가장 즐겁게 바라보는 시기인데, 이 때 죽음을 택하였다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라 아니할 수 없다.
누가 그리고 무엇이 그 어린 여학생으로 하여금 죽음을 선택하게 하였는가. 우리 기성세대 전부는 반성하여야 한다. 얼마나 이 세상이 싫었기에 얼마나 사람들이 미웠기에 이들이 보기 싫어 죽음을 택하였을까? 3명의 여학생이 본드를 흡입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탈선한 여학생이 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택한 여학생이 한 것이기에 그것으로 여학생을 죄인시하고 그들의 죽음이 오히려 부도덕하다고 생각하여서는 아니된다. 만일 그 여학생이 생명의 중요성을 인식 못하고 가볍게 생을 포기하였다면 그것이야말로 사회가 책임을 질 일이라 하겠다. 말하자면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풍조가 그들로 하여금 자살을 택한 것이 되기에 문제를 사회의 책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강군의 손가락 절단사건은 사회가 떠들썩 하였다. 목숨을 끊은 것에 비하면 손가락 절단은 큰 사건이 아니다. 그러나 손가락을 자른 자가 아버지라는데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고 강군의 처지가 하도 불쌍하여 성금을 모아준 것이다. 그러나 강군의 사건을 가만히 보면 조선시대에 있었던 단지(斷指)에 해당된다.
조선조가 장려하는 효행의 표본으로 효행과 열녀의 행실을 기록한 삼강행실도(三鋼行實圖)에 204건에 달하는 단지의 사례가 나온다.
이것은 넷째 손가락인 약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약에 타거나 그 피를 반죽하여 부모에게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가 병환이 위중한 부모에게 하는 행위이기에 아버지가 손가락을 잘라 보험을 타겠다는 것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손가락으로 부모에 효도를 하기는 강군의 경우도 삼강행실도의 단지와 유사하다.
특히 강군이 경찰서장에게 보낸 편지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강군이 효자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강군의 효성스러운 마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조선조의 삼강행실도에 단지 이야기를 자주한 것은 그러한 행동을 장려하는 것이고 그러한 행동을 한 효심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비한다면 강군의 손가락 절단을 장려하기 위하여 성금을 보낸 것이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대통령까지 금일봉을 하사할 사건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장려하고 무엇을 말리기 위한 행동의 기준, 가치관이 정립되어야 하겠다.
3명의 여학생이 자살한 것이 만일 프랑스에서 야기된 것이라면 전 프랑스 중고등학생이 검은 리본을 달고 애도를 하고 기성세대에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을 추궁하는 데모를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손가락을 자른 아버지의 처벌을 요구하는 항의문을 보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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