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미국의 교회를 우리 TV에서 보여준 일이 있었다. 교회가 매스컴에 소개되는 것이 이것만이 아닐 것이지만 이것은 여러 모로 인상적이었다. 이것은 미국의 한 성당에 노숙자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어수선한 광경이었다.
미국과 같이 잘 사는 나라에도 우리 나라와 같이 노숙자가 많이 있는 모양이다. 미국에서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 실업자에 대한 수당이 별도로 지급되고 극빈자를 위한 숙식소가 마련되어 있는 곳이 많다.
말하자면 유럽 나라들보다는 못하더라도 우리 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사회복지정책이 발달되어 있고 사회복지 시설이 잘 되어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러한 나라에도 노숙자가 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으나 TV에 비친 바로는 많은 노숙자가 있었고 이들을 교회 그것도 천주교회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풍경이 TV에 비쳤던 것이다.
성당도 상당히 넓고 고딕식 기둥이 있으며 제대와 감실이 고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 누가 보아도 그곳은 성당의 본당이었다. 내부의 의자를 한곳에 몰고 식탁과 의자를 놓아 식당을 만들고 수녀님들이 식사를 운반하는 광경이 부산하고 마치 시장판과 같이 어수선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본당을 노숙자 식당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잠도 잔다고 한다.
미국의 교회는 우리 나라와 달리 주일 미사에 참가하는 사람이 극히 적어 우리가 죽은 교회라고 비웃기도 한다. 그러나 노숙자를 대접하는 것을 보니 미국 성당이 결코 죽은 성당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서슴지 않고 앞서 행하는 것이 미국의 교회였다. 그것도 가장 성스러운 감실이 있는 성당을 마치 도떼기 시장과 같이 가난하고 남루한 사람들의 생활의 장으로 내어 놓은 것이다.
이러한 광경은 우리 나라에서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 보았다. 우리 나라 교회 특히 우리 성당은 남루한 옷을 입고 들어서는 사람이 있으면 입장도 못하게 할 것이다.
주일이면 미국 교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자들이 붐비는 곳이 한국의 교회이다. 그러나 미사가 끝나면 굳게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우리의 성당이다.
감실이 모셔진 성스러운 곳을 신자도 아닌 노숙자에게 내어주어 그곳에서 숙식을 하게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위에서 본 미국교회가 기독교가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는 서구의 교회를 대표한다면 우리 나라의 교회는 서민 대중과 일치하지 못한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가톨릭이 이땅에 씨를 뿌린지 200년이 넘었다고 자랑하면서도 아직도 우리 전통문화에 토착화하지 못하였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우리 성당이 미사시간 외에 성당의 문을 굳게 닫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가톨릭 성당에 미사시간 외에 문을 닫아 성체조배마저 할 수 없는 성당이 많다.
우리 나라 성당들도 신자에게는 물론 신자 아닌 사람들에게도 문을 활짝 개방하여 추운 날에 앉았다 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노숙자가 서울역이 아니라 성당으로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성당이 지역 주민이 마음놓고 찾아오는 장소로 만들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장소, 그러기에 따뜻하면서도 성스러운 장소가 되어야 우리는 한국 천주교회가 우리 사회에 토착화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성당이 우선 신자들의 집이 되고, 비 신자까지 포함하는 이웃의 집이 되며 온 누리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의 집이 되도록 우리는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필자 약력
△서울대 사범대 역사학과 졸업
△비엔나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졸업(인류학박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교수
△98년 정년퇴임, 명예교수
본사는 지난 십수년간 애독자 여러분의 사랑을 받아온 바 있는 시사칼럼 「방주의 창」을 9월 6일자부터 부활합니다.
성직, 수도자 평신도 등 매주 각계 인사들을 초대, 교회와 사회의 제반 현상과 현안들을 신앙인의 시각에서 명쾌하고 시원한 필치로 함께 방안을 찾아 나가고자 하는 방주의 창에 다시 한번 애독자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을 요청합니다.
이번주부터 재개되는 방주의 창을 위해 이광규(안토니오ㆍ서울대 명예교수), 임순희(헬레나ㆍ민족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 숙명여자대학교 정치학 박사), 박인환(베드로ㆍ성남시 단대초등학교장, 전수원교구 평협회장), 김준철 신부(토마스아퀴나스ㆍ서울대교구 선교국장)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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