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먹고 자라나는 참 사랑.
지금도 휴전선 이북에 꼭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굶어 죽어가는 동포가 있다. 주가가 부도라는 IMF시대에 우리가 무슨 부자라고 이북 동포를 돕나? 나도 실업자인데 어떻게 폭우로 고통받는 수재민을 돕나?
우리 모두가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이웃을 도와주는 참 사랑은 존재할 자리가 없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와같은 생각들은 모두 자기 합리화의 한 방편일 뿐이다. 참 사랑의 실천은 단순한 부의 분배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가난을 통해서 가난한 이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지혜를 부여해 주신다. 그것은 참 사랑을 실천토록 도와 주신다. 어느 특정 부자가 가난한 이에게 거금을 희사했다고 하자. 그 참뜻은 순수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반대 급부로 하느님의 축복을 기대 할 수도 있거니와 사회적 칭송을 희구할 수도 있다. 만일 그런 욕망이 있었다면 그것은 자선도 아니고 참사랑도 아니다. 오히려 자기 만족과 자기 목적 달성의 요식행위일 뿐이다. 나 자신도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있으나 지금 묵상 중에 생각하니 남의 이야기만은 아닌 듯 싶다. 나도 젊어서 작은 사업이라도 운영할 때. 또 교회공동체의 작은 책임이라도 지고 있었을 때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 나이들어 자녀들이 주는 작은 용돈으로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교회내 여러 어려운 공동체에 기쁜 마음으로 쪼개어 응답하는 행위가 이토록 뿌듯한 하느님의 참 사랑을 느낄 줄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가난(마태 5, 3)을 통해서 이웃사랑을 실천토록 인도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가난한 이를 도와주는 자선행위는 결코 가진 자의 전유물운 아니며 오히려 하느님의 참사랑을 깨닫는 자의 전유물이다. 자선은 거저 주고 베푸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특은을 받을 수 있는 수혜자로서 기쁨을 실천한 사람만이 체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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