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태초에서부터 수천년 동안을 아담의 순례로 볼 수 있다. 이 순례는 창조주 하느님의 손으로 지음 받아 세상에 들어온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정처없이 떠돌게 되는 유랑(창세 3,23)에서 시작된다.
아담의 순례는 -하느님과 함께 걸으라는 부르심과 그의 불순종, 그리고 구원의 희망에 이르기까지- 창조주 하느님께 받은 온전한 자유를 나타낼뿐만 아니라 아담의 곁에서 함께 걸으시며 그의 발길을 지켜 주시는 하느님의 구원의지와 사랑의 계약을 암시해준다. 얼른 생각하면 아담의 순례는 자신의 목적지인 거룩한 곳, 즉 에덴 동산으로 가는 길에서 빗나간 듯이 보이지만 이러한 여정도 결국 회개와 귀향의 길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방황하는 카인의 뒤를 따라 다니시며 그를 지켜 주신다·(창세 4,15) 『저는 뜨내기, 당신께서 적어두셨나이다. 제 눈물을 당신 부대에 담으소서, 당신 책에 적혀 있지 않나이까?』(시편 56,9)
죄 가운데 자포자기의 길로 접어든 탕자와 끝까지 함께 하셨던 분은 아낌없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모든 사람과 모든 그릇된 길을 회귀와 포옹의 여정으로 변화시키는 힘은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이다·(루가 15,11-32)
이러한 보편적인 순례 역사에는 『컴컴한 뒷골목』과 『비뚤어진 길』(잠언 2,13-15)을 걷는 어두운 인생 역정이 깃들여 있다. 거기에는 또한 『생명의 길』, 정의와 평화의 길, 진리와 성실의 길, 온전함과 정직함의 길을 통한 회개와 회귀도 함께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3. 아브라함의 순례는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는 구원 역사의 전형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표현 『네 고향을 떠나라』(창세 12,1)와 아브라함의 파란만장한 일생의 단계들과 그가 겪었던 여러 관계들은 이미 구원의 탈출, 곧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출애급에 대한 훌륭한 선취였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상기시키고 있다. 『아브라함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를 불러 장차 그의 몫으로 물려주실 땅을 향하여 떠나라고 하실 때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사실 그는 자기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떠났던 것입니다. 그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약속의 땅에서도 같은 약속을 물려받은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나그네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머물러 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약속 받은 것을 얻지는 못했으나,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했으며 이 지상에서는 자기들이 타향 사람이며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ㆍ』(히브11,8-15)
그도 그럴 것이 나중에 아브라함은 자기 자신을 약속의 땅에서조차 『나그네』(창세 23,4)로 표현했으며 바딴아람과 이집트로 피난하였던 그의 후손 이스마엘(창세 47장과 50장 참조)과 야곱도 마찬가지였다.
4. 곧이어 위대한 출애급의 순례가 시작되었던 곳은 파라오의 땅이었다. 출발과 사막에서의 방랑과 시련, 유혹, 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감 등의 여러단계는 구원 역사의 모범적 사례가 되었다. 여기에는 파스카와 만나, 물, 메추라기를 내려준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하느님과의 친교, 시나이의 계시, 해방의 선물 뿐만 아니라 불신앙, 우상숭배, 이집트의 노예생활로 되돌아가고 싶은 유혹 등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출애급의 역사에서 한 가지 영원한 가치를 배운다. 이집트 탈출은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에겐 언제까지나 생생하게 기억되는 「기념비적 사건」이다. 이사야는 바빌론에서 풀려난 일을 새로운 출애급으로 노래한다(이사 43,14-21)
이스라엘은 과월절을 지낼 때마다 새로운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고 있으며 지혜서에서는 과월절이 종말론적 표현으로 바뀌게 된다ㆍ(지혜 11-19장 참조) 결국 순례의 궁극적인 목적은 새로워진 창조 질서 안에서 하느님과 완전한 친교를 이루는 약속의 땅에 이르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걸으시는 순례자이시다. 『너희의 하느님께서는 ··· 이 막막한 광야를 돌아다니는 동안 너희를 돌보아 주었으며, 지난 사십 년 동안 너희와 함께 계셔서 너희에게 무엇 하나 아쉬운 것이 없지 않았느냐?』(신명 2,7)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리로 오는 도중에 시종 지켜주셨다ㆍ』(여호 24,17)
사실 하느님께서는 향수에 젖어 이렇게 말씀하신다. 『씨 뿌리지 못하는 땅 사막에서 나를 따르던 시절, 젊은 날의 네 순정, 약혼 시절의 네 사랑을 잊을 수 없구나』(예레 2,2) 순례자의 이러한 본질적 바탕이 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땅에서 몸 붙여산 적이 있었기에 자기들한테 몸 붙여 사는 사람을 구박하거나 학대할 수 없다·』(출애 22,20) 오히려 그들은 『한 때 이집트 땅에서 떠돌이 신세였으니··· 떠도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ㆍ』(신명 10,19)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길손이며 나그네』(시편 39,12)라고 진술한다.
이스라엘의 천년 역사에 걸쳐서 기록된 시편은 이런 기도를 통하여 공동체와 개인의 편력에 대한 역사적, 신학적인 자각을 증언하고 있다. 자기 소유의 땅에 살아도 몸 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레위 25,23)는 사실이 희망의 징표로 변화되는 것은 바로 시온을 향한 신앙 순례를 통하여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환희의 노래를 부른다. 『주님의 집에 사는 이는 복되오니 길이길이 당신을 찬미하리이다. 순례의 길을 떠날 적에 주님께 힘을 얻는 이는 복되도다ㆍ』(시편 84,4-5)
5. 예언자들은 좌절과 불신앙에 흔들리기 일쑤인 하느님 백성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메시아의 순례를 가르쳐 준다. 메시아의 순례는 지상의 모든 민족들이 평화와 희망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이 자리하고 있는 시온으로 물밀듯이 밀려오리라는 종말론적 지평으로 열려 있다ㆍ(이사 2,2-4 미가 4,1-4 즈가 8,20-23) 하느님의 백성은 이집트 탈출을 다시 체험하며 성령께서 그들의 몸에서 돌처럼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불어 넣어주시도록 해야 할 것이다(에제 36,26-27)
메시아의 약속을 완성하기 위한 여정에서 이미 이 순간에도 모든 인류는 『헤매는 것은 찾아내고 길 잃은 것은 도로 데려 오리라ㆍ』(에제 34,11-16)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거저 먹고 마시도록(이사 55,1-2) 초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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