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과도 같은 붉은 꽃을 품은 푸른 동백 숲 사이에서 그들을 만났다. 케사반 부부. 그들과 같이 홍도를 여행하면서 같이 사진도 찍고 식사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론 언어소통에 문제가 있었지만 짧은 영어와 몸짓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들과 나눈 컵라면에서도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는 맛이 있었다.
목폭로 나오는 뱃길이었다. 몇몇 낚시꾼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야, 너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 『야, 너 수염 좀 깎아라』는 등 몰상식한 자세를 보였다. -사실 그들은 국적은 싱가폴이지만 태생이 인도라 검은 피부를 갖고 있었고 사리를 입고 있었다 - 그런 말을 듣고 있자니 내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분노와 함께 부끄러움을 느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이 나와 같은 피를 나눈 사람들이라니···」 나는 감정을 깊숙이 숨기지 못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 부부는 나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 대충 상황을 짐작했던 것 같다· 그들이 무슨 말이냐고 물었을 때 그래도 우리나라에 대한 나쁜 인상을 심어주긴 싫어서 거짓말을 했다. 『그들이 말하길, 당신이 수염을 깎으면 TV 탤런트처럼 아주 잘 생겼을 것이라고 얘길 했다』라고.
지금 우리는 세계화와 민족주의의 이중가치 속에서 혼란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구조조정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자기를 개방해야 하는 아픔과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어쩌면 이 시기가 우리에게 하나의 기회요 축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과거의 태도를 고집한다면 결코 변화는 오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사회의 어려운 부분을 맡기면서도 우리는 결코 거기에 발을 들여 놓지 않으려는 태도에서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 오늘 난 케사반 부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짧은 몇 마디 말과 몸짓으로도 국경과 민족을 뛰어 넘는 정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을…. 거기엔 어떠한 이념과 가치의 대결도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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