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오늘날 유동인구(流動人口) 증가 현상은 국경 없는 사목을 요구하고 있다. 유동인구 현상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방향으로 노력하도록 자극하고 있다.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구조는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진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가 온 세상을 주름잡게 되었는가 하면, 정치도 현실적으로 볼 때 세계적인 차원을 취하고 있으며, 사회 생활도 세계적인 단계에서 그 활성화의 구심점들을 찾고 있다. 유동인구 현상이라는 사실만이 아니 실로 이 진보하는 세계야말로 우리가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사목의 과제인 것이다.
이제 인종과 문명과 문화와 이념들이 서로 섞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무관심한 채로 머물러 있기란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인류는 글자 그대로 지구촌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 국경들이 무너져가고 있고, 우주가 재형성되고 있으며, 나라간의 거리가 사라져가고 있다. 이곳의 생활이 머나먼 저곳의 생활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가 한 마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조건 아래에서 신앙이란 단순히 하나의 보존되고 간직되어야 할 유산일 수만은 없다. 하나의 현실이어야 하며 심화되고 발전되고 전파되는 것이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유동인구 현상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눈에 띄게 다양한 형태로 파급되고 있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역사와 함께 나아가는 교회의 여정에 있어서 우리에게 도전해 오는 당면한 과제요 의미심장한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ㆍ』(I고린 9,16) 하고 갈파했던 바오로 사도의 엄숙한 말씀을 새삼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글의 목적은 교황청 이주 사목 평의회에서 펴낸 관광 사목 총지침서 「지상의 나그네」(Peregrinans in terra)와 각국 주교회의에 보내는 서한 「교회와 유동인구」, 그리고 1998년 5월 터어키에서 열린 제5차 세계 관광사목 대회 직전에 발표된 「대희년의 순례」등을 중심으로 교회의 가르침에 나타나고 있는 관광 사목의 신학적 근거를 살펴보고 한국 교회에 있어서의 관광 사목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 있다.
I 관광 사목의 신학적 근거
1. 『하느님 보시기에 저희는 선조들처럼 이리저리 떠돌며 남에게 몸 붙여 사는 신세였습니다. 아무 희망도 없이 떠도는 모습은 마치 땅 위를 스쳐가는 그림자 같았습니다』(I역대 29,15) 일찍이 다윗 왕이 하느님 앞에서 고백했던 이 말은 다윗 왕 뿐 아니라 모든 인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묘사해 주고 있다. 사실 「길」은 떠남과 되돌아옴, 들어감과 나옴, 내려감과 올라감, 걷는 것과 쉬는 것 등 인간의 일상사가 담겨진 실존의 상징이다.
인류는 세계 무대에 출현한 첫 순간부터 새로운 목적을 찾아 이 땅의 지평을 넘나들며 무한과 영원을 향한 순례를 계속해 왔다. 인류는 강과 바다를 건넜으며 하늘과 땅이 조화롭게 만나는 거룩한 산의 정상에 올랐다. 인류는 태어남을 이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 것으로, 죽음을 땅의 모태 속으로 혹은 하느님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여겼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상황을 나타내는 지상 여정(교회헌장 49항 참조)에서의 순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언제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고도의 유동성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사회에서 순례는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하여 관광 사목은 일반적인 사목적 배려의 차원에서 순례사목에 대한 명료한 신학적 기초를 제시해야 하며, 확고하고 영구적인 사목 양식을 이끌어내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순례를 제안하고 장려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인류의 복음화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순례를 통하여 사람들은 보다 깊고 성숙한 신앙으로 변화되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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