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갈수록 작아지고 뒤에 오시는 분은 점점 커져야 합니다』 22일 수도자 및 평신도들과 함께 한 석별 미사후 이어진 송별의 자리에서 김추기경은 세례자 요한의 말씀을 빌려 교구민들에게 당부했다. 지난 30년간 서울대교구와 한국교회를 이끌어온 거인, 한국 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해온 김수환 추기경의 면모를 한순간에 파악케 해주는 순간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추기경은 요즘 한창 유행하는 「사랑을 위하여」를 불렀다. 물론 신자들의 「열화같은」 요청에 의해서였지만 성당내에서 그것도 명동성당안에서 유행가를 불렀다는 것 그것 역시 김추기경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결코 낯설지 않고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같은 선택이 바로 김추기경이 지난 30년간 끊임없이 따뜻한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날 명동대성당 안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성당 경내 곳곳은 야외 미사장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감사미사와 송별식이 진행되는 두시간여 동안 유난히 따가운 땡볕에서도 신자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요 행사장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아닌 상황에서 더구나 전광판도 없이 단지 육성으로만 함께 할수 있는 최악의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의 사랑은 식을 줄을 몰랐다.
본당별로 준비한 피켓은 신자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극치를 이룬 듯 했다.『사랑해요 추기경님』을 비롯, 『나의 사랑 나의 추기경님』『영원한 우리들의 연인』『우리의 등불』『추기경님 뜨겁게 기억하겠습니다』 『가난한 이웃들의 영원한 친구』 등 등 추기경에 대한 사랑과 존경,애정을 담은 피켓은 무더운 여름날씨에도 불구 한복으로 차려입은 여성신자들과 함께 물결을 이루었다.
이날 김추기경이 78만번이 넘는 미사와 영성체, 주모경과 화살기도 157만번 이상, 묵주의 기도 393만번에 달하는 영적예물을 평신도들로부터 받은 것도 하나의 「기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추기경은 이 「어마어마한」 영적 예물에 그 특유의 조크로 화답했다. 『이다음 죽어서 베드로 사도앞에 나갔을 때 만일 베드로 사도께서 아직 천당에 올 때가 못되었으니 연옥에 가서 기다리라고 하면 여러분이 오늘 제게 주신 이 영적 예물을 보여드려야겠다』고.
장내를 웃음바다로 이끈 이같은 조크는 바로 때와 장소에 따라 순간 순간 분위기를 모으고 만들어가는 김추기경의 매력 포인트라 할 수가 있다.
제12대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이제 공식적으로 큰 임무와 직무를 벗게 되었지만 그의 서울대교구장 재임 30년은 우리 한국 전체가 한마디로 도약과 비상을 거듭하는 성장의 시기였다는 사실로 우리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
100만이 채 못되는 한국교회를 3백만이 넘는 신자로 넘치게 하고 한국사회안에서 역동적 임무와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한 포스트로 자리매김하는데 김추기경의 역할을 결코 간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60년대를 이어 70년대, 80년대 그리고 90년대초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사회속에서 더욱 빛이 났다는 평가도 그래서 지나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정치 경제사회는 물론 인권문제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위기와 어려움에 처한 한국 사회안에서 진리를 말하고 정의를 촉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한국 사회는 김추기경의 덕을 참으로 많이 본 셈이다. 그늘지고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웃들에게 길을 밝혀주는 등대이자 기댈 수 있는 언덕, 희망의 중심이 되어준 김추기경은 그래서 지난 수년간 한국을 움직이는 몇 안되는 인물,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추앙을 받아 왔을 것이다.김수환 추기경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사목현장에서 앞장서 실현시켜온 인물이다. 교회와 세상을 만나게 하고 세상과 대화하면서 사회속의 교회로 자리매김하도록 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 적절한 시기에 최상의 능력으로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우리 사회와 교회의 복이 아니었을까.
이제 김수환 추기경의 마음은 누구보다 홀가분할 것이다. 지난 3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어깨를 짓눌러온 무거운 짐으로부터 진정 해방의 기쁨을 맛볼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거운 짐으로부터의 해방을 축하드리면서도 신자들의 이름을 빌려 한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다.
지금까지 그래오셨듯이 늘 우리들의 든든한 울타리로 함께 해 주시기를, 어렵고 소외된 이들의 희망의 등대로 늘 우리 곁에서 함께 해 주십사 하는 것이다.
지난 30년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다시 한번 존경과 사랑을 드리는 바이다. 사랑이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지난 30년간 모든 이들의 무거운 짐들을 나누어 지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노고를 거두어주시고 아울러 앞으로도 계속 김수환 추기경님의 영육간 건강을 지켜주시기를 애독자 여러분과 함께 간절히 기도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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