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제13대 서울대교구장에 청주교구장 정진석 주교를 임명했다. 바로 5월 30일의 일이다. 우선 한국을 상징하는 서울, 수도교구의 교구장으로 벅찬 발걸음을 내 딛게 된 신임 서울대교구장님께 축하의 인사를 드리면서 주교님의 앞날에 하느님의 축복과 가호가 함께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는 바이다.
정진석 주교의 서울대교구장 임명은 그의 사목 경력과 인품 그리고 학문적 깊이 등을 고려해 볼 때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고 결과라는 게 일반적인 평인것 같다. 미처 40이 못된 젊은 나이에 주교직이라는 중책을 맡아 오늘의 청주교구를 반듯이 키워냈으며 너그럽게 품어주는 따뜻한 품성으로 사제들과 신자등 교구민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아온 것이 바로 정진석주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잡아온 책과 그의 손을 거쳐나간 무수한 저서들, 때문에 정주교는 누구보다 교회 가르침에 정통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교회법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주교를 특징지우는 이 같은 현상은 재임 28년간 그가 만들어낸 23권의 저서와 13권의 번역서가 뒷받침해 주고 있다. 공동편찬한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와 해설,공동번역한 교회법전 외 간추린 교회법 해설등 정주교의 저서 번역서들은 우리교회 모든 구성원들이 알아야할 가르침과 원리들을 명쾌하게 제시해주는 대표적 서적들이라 할 수 있다.
96년 초 정주교는 김대건, 최양업 두 신부의 서한 43통을 완역, 세상에 내놓았다. 꼬박 6개월이 걸린 이 작업을 위해 정주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기도 시간인 6시 30분까지 번역작업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자료가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면 사장되고 마는 우리 교회의 현실 속에서 바쁜 사목자의 일과에서 시간을 쪼갠 이 작업은 한국교회의 기초를 놓고 세운 두 신부의 사상과 영성활동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귀한 선물로 평가되고 있다.
이미 일반 언론에서 보도된 바도 있지만 신임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정주교의 선택은 한국교회와 사회 안에 시사 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하겠다. 우선 내적 충일을 향한 포석이 그 첫 번째가 아닌가 싶다.
한국교회는 60년대 말에서부터 8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한국사회와 함께 호흡하면서 함께 성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30년간 우리 교회는 때로는 목소리로, 때로는 몸으로 그 격랑을 앞장서 헤쳐왔고 그 같은 모습은 한국사회 전반에 강한 반향을 불러일으켜왔다.
순교의 시대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초췌해질 대로 초췌해진 한국교회가 눈부신 성장기를 맞은 것은 바로 지난 30년간이었다. 시대의 징표를 읽고 선두에 서서 정의의 물줄기를 잡아온 한국교회 그 중심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함께했으므로 가능했고 상승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이 물론 일반적인 평가다.
90년대를 지나 2천 년대를 향한 지금의 시점에서 많은 이들은 이제 교회가 속을 단단히 채울 때가 되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불쑥 커버린 외형만큼이나 속을 채우는 일이 필요한 시기에 정주교의 서울대교구장 서임은 이 같은 시대적 요청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라 할 수가 있다.
그동안 커진 목소리만큼 교회가 요청받는 또 하나의 과제는 보다 단단한 교회안의 일치의 모습일 것이다. 사제단의 일치, 사제단과 주교단의 일치, 그리고 평신도와의 일치 등 새 서울대교구장의 몫은 이 부분에서도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두를 감싸 안는 포용적 자세와 누구에게나 열린 개방적이고 소탈한 성품 등에서 우리는 해법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는 병페적 요소에 대한 적극적 대응 역시 한국교회에 맡겨진 중대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생명을 살리는 기본적 인권수호에서부터 가정의 건강, 사회의 건강을 되찾는 일이야말로 새 서울교구장에게 우리 교회와 사회가 함께 걸어도 좋을 기대라 할 수가 있다.
물론 신임 서울대교구장의 앞날에 영광과 기쁨만이 놓여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해방된 기분」. 5월30일 30년 세월동안 양 어깨에 짊어져온 무거운 짐을 벗게 된 김수환 추기경의 심경을 이보다 더 잘 대변할 수 있는 말은 아마도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안에서 매스컴이 선호하는 제1의 표적으로, 한국인이 가장 신뢰하고 존경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해온 김수환 추기경의 30년은 그 같은 무게가 주는 영광만큼이나 진정 가시방석의 연속이라 표현할 수가 있을 것이다.
시대는 변했어도 서울대교구장이라는 자리가 갖는 비중만으로도 다가올 무게와 압박감,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은 분명하다. 주님께 봉헌된 이 막중한 자리가 정진석주교의 소감대로 진정 『모든 국민에게 행복을 일깨워주는 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서울교구민은 물론 모든 교회 구성원들의 합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 한 번 신임 서울대교구장의 탄생을 마음으로부터 축하드리면서 이제 함께 공부하면서 우리 스스로와 교회, 사회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찌워나가는데 한마음으로 동참하기를 요청하는 바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