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옛정이 그리워 집에서 가까운 성당을 마다하고 먼길을 걸어오시는 할머님이 계셨다.
연세가 일흔이 넘은 만큼 성당까지 오시려면 지팡이를 짚고도 길에서 서너차례 쉬셔야 하는데, 손에는 꼭 과일 담은 비닐 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가정 살림이 어려운 아녜스 할머님은 몇 푼 안되는 용돈을 쪼개 교무금, 헌금 내고 과일 사오시는 것으로 대부분 쓰셨다. 여기서 과일은 주임신부님의 몫이었다. 미사에 참례한 다음 계단을 힘겹게 내려와 신부님께 안부를 묻고는 과일 봉지를 손에 쥐어주곤 하셨다.
이같은 아녜스 할머님께서는 특별히 초대받지 않고도 사제관을 제집 드나들 듯 자유롭게(?) 드나드셨다. 그리고 사제관에 들어와서는 『점심 먹고 갈테니 밥상 차려라』, 『좀 쉬었다 가야겠다』 하시며 원하는 일을 보고 가셨다.
남들은 사제관 문턱이 높다고 하는데 그 문턱을 낮춘 할머니께서 몇해전 여름 어느 주일, 마찬가지로 참외 몇 개가 든 비닐 봉지를 들고 성당에 오셨고 신부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바쁜 나머지 인사를 건성으로 받았다.
그러자 큰 소리로 소리치는 것이었다. 『요즘, 신부 아주 건방져! 인사도 안받고!』 그러자 본당 신부님께서 할머니께 잘못했다고 말을 건네자 다시 손자 나무라듯 너그러이 타이르시는 것이었다. 『신부가 그렇게 살면 안되는겨. 누구에게나 친절해야지, 암만.』
사제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잘 살라 하시던 할머니께서 오래전에 돌아가셨는데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누구를 야단치실까?
『예수님, 아녜스 할머니께서 인사하시면 공손히 받으십시오. 세상 일에 너무 신경 쓰다 할머니 인사 건성으로 받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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