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오로가 유대인들의 율법의 허구성을 반론하면서 그들을 질타했던 ‘남은 가르치면서 왜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로마 2,21)라는 말씀을 자주 떠올리고는 하는 까닭은 필자가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지 어느덧 33년이 넘었어도 바로 이 말씀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남을 가르친다는 것, 그것도 해마다 고만고만한 나이의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자칫 타성에 젖기 쉽고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 자신이 그만큼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지낼 때가 종종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맹자의 「진심편(盡心篇)」에 나오는 군자삼락(君子三樂) 중에서도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得天下英才而敎育之)’ 기쁨을 강조하지만, 필자로서는 퇴계 이황이 벽에 붙여놓고 몸소 실천하고자 노력했던 네 가지 덕목, ①공자가 시 삼백 편을 한마디 말로 가려낼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는 생각을 사특하게 하지 않는 ‘사무사(思無邪)’, ②진정한 지식만이 자신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毋自欺)’, ③자신만이 알고 있고 남은 알지 못하는 ‘홀로’ 있을 때에 스스로 삼가야 하는 ‘신기독(愼其獨)’, ④공경 하나는 사특한 것 백 가지를 이길 수 있는 ‘무불경(毋不敬)’ 등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고는 한다.
퇴계가 자신의 언행의 지표로 삼았던 이와 같은 덕목은 남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1코린 12,28),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에페 4,11), ‘나는 이 증거의 선포자와 사도로,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과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진실을 말할 뿐,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1티모 2,7)라는 말씀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나의 형제 여러분, 많은 사람이 교사가 되려고 하지는 마십시오’(야고 3,1)라는 말씀이 자꾸만 되살아나고는 하는 까닭은, 어린 시절부터 동문수학했던 필자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V 교수가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전해준 다음과 같은 일화 때문이다. 함께 근무하는 같은 학과의 J 교수가 올 8월 말에 정년을 하게 되어 있어서 고별강연과 정년퇴임식 그리고 기념논문집과 기념문집의 발간 등 그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련해서 작년 하반기부터 몇 번에 걸쳐 의사타진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그 교수가 지난 6월 초에 갑자기 찾아와서는 6월 중순에 간략하고 소박하게 고별강연 겸 정년퇴임식을 하겠다고 해서 촉박한 일정과 행사준비의 어려움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누던 중 난데없는 삿대질과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삿대질과 막말을 했다는 그 교수가 서정시를 선호할 뿐만 아니라 풀잎에 맺힌 이슬이 발길에 채여 떨어지는 것이 안쓰러워 아침산책을 하지 못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는 했다는 사실에 V 교수는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마음 착잡해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필자는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 복종하게 만들면, 그 온몸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야고 3,3)라는 말씀을 전하면서, 삿대질과 막말을 했다는 바로 그 교수에게 ‘남은 가르치면서 왜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라고 한 번 물어보라고 V 교수에게 제안했지만, 그가 그렇게 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남을 가르치는 사람의 스스로에 대한 가르침, 그 중요성을 질타한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나 맹자의 말씀이나 퇴계의 덕목을 되새기면서, 육십 평생에 난생 처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삿대질과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을 듣고는 어이없어 하던 V 교수에게 해럴드 블룸이 자신의 「시적 영향의 불안」에서 솔직하게 토로한 다음과 같은 고백을 위로삼아 전하고 싶다.
‘대학교수로 출발하려던 한 젊은이로서 나는 나 자신이 쓸모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정확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선택한 직업이 골동품수집광이나 문화소매상으로 축소될 수도 있다는 생생한 두려움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또 문학교수 학자가 좋은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해로운 일은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 또는 자신에게는 해롭게 하더라도 어쨌든 남에게는 해롭게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음을 기억하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