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
“왜요?”
“이 책 읽으면서 슬프지 않았어?”
“아~니요!” 아이들은 의아한 듯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입을 쫑긋 세우며 커다랗게 외친다. 빈민지역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고통과 비애가 담긴 동화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이 울었던 나는 똑같은 책을 읽고도 냉담하게 반응하는 아이들의 반응에 순간 무척 당황스러웠다.
“왜 슬픈데요?” 앵무새처럼 여기저기서 따라 나오는 소리.
“너희 또래 아이들이 부모님도 없이, 어렵고 힘든 상황을 이겨나가며 서로 돕는 모습이 감동적이지 않니? 게다가 실제 있었던 일인데 아무런 느낌도 없단 말이야?”
약간 흥분해서 말하자 아이들은 순간 숙연해진 듯하더니, 끝내 한 아이가 빈정대며 말한다.
“그런데 이상해요. 돈도 없는 아저씨가 아이들을 왜 데려다 키워요?”
자신도 가난하면서 어떻게 아이들을 데려다 먹여주고 돌봐 주냐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건 없이 남을 돌봐주는 일에 감동하기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따지는 아이들의 냉랭한 모습에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내가 느끼고 깨닫지 못하면 나의 마음 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아름답다는 의식(consciousness)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 노숙자나 장애인을 봐도 아무 느낌이 없는 것도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의식은 경험하고 있는 심적 현상의 총체라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체험하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의식은 모든 지식기반의 토대이며 자아를 만들어간다. 그러므로 느끼며 깨닫는 과정은 건강한 인성을 만들어 가는데 매우 중요하다.
생각은 의식이 아니다. 의식은 교실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험지에 쓴 답은 이해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해도 정확하게 쓸 수 있다. 다만 답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깨닫고 분별하게 해주는 의식의 차원이 아닌 그저 개념일 뿐이다. 우리의 교육은 오로지 대입구멍을 뚫기 위하여 경험보다는 이론, 자기발견보다 생존의 법칙에 의한 경쟁, 그리고 느끼고 깨닫는 과정보다 신속하게 답하는 실용에 익숙하다. 게다가 아이들은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고통스럽고 잔인하고 슬픈 이야기를 구경하듯 관망하는 것에 길들여져 간다. 아니 오히려 즐기는 듯하다.
미디어는 시공이 없고 단지 우리 삶 안에 들어올 뿐이다. 장소에 대한 감각도 다르다. 그래서 메이로비츠(Joshua Meyrowitz)는 우리는 분별과 감각이 없는 장소에 살고 있다고 한다. 비극과 홍수 재난 등의 뉴스가 실제이지만 내가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경험 없이는 성찰도 상식도 없다. 우리의 많은 경험이 미디어에 의하여 조종되고 진짜 상호작용 없이 경험하고 느끼고 판단한다. 분명 실제로 고통 받는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에게는 영화나 드라마처럼 그저 복사된 또 다른 이야기일 뿐이다.
의식은 어디서 오는가? ‘마음’은 뇌가 살아서 의식을 촉진할 때 작동한다고 한다. 의식 안에서 마음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으로 생각과 정보를 처리한다. 실제경험을 통하여 감정과 생각과 의지를 깨우고 식별하여 결정하고 행동한다. 의식은 현실체험을 통해 아픔, 슬픔, 따뜻함, 차가움, 외로움 즐거움 등의 감각이 느낌으로 다가오면서 형성된다. 거기에서 의지와 결심이 생기고 상상력과 창의력이 나온다. 그러므로 어떤 경험을 어떻게 했고 그것을 통해 어떤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품성과 인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깨어 느끼고 분별하지 못한다면 웃음도 눈물도 ‘마음’을 만나지 않은 피상성에 머문다. 그저 버튼을 살짝 누르고 튀어나오는 반응에 불과하다. 미디어 세상에 노출된 아이들은 자신의 현실세계와 작동하는 가상의 시스템과 함께 살아간다. 한 번도 직접 체험하지 않아도 잘 안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의 프레임에서 보여주는 부분이 전체라고 인지한다. 더욱이 경험하기보다 이론을 요구하는 우리 교육현실에서 느끼며 깨닫는 과정이 가상경험에서 더 많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창인 우리의 소중한 ‘의식’이 잠들고 있다.
혹시 우리 아이들이 체험하는 하느님도 미디어 프레임 안에 갇혀 계신 것은 아닌지 몹시 걱정된다. 그것이 두려워 슬퍼하는 나에게 “왜 슬픈데요?”라고 따질까 상당히 저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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