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안네, 치셤, 돈 까밀로… 사제들의 사표(師表) 하면 떠오르는 이들이다.
본당 사제들의 주보 성인인 아르스의 성자(聖子)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는 공부 못하기로 유명한 신학생이었다. 늘 ‘똘레’(이런 저런 사정으로 신학교에서 강제 퇴교당하는 것을 이르는 라틴어) 걱정을 하고 살았던 비안네는 신학교에서도 눈총받는 골치덩이였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쫓겨나 사제직을 포기할 위기에 처한 그에겐 결정적인 은인이 있었다. 고향의 발레 본당신부와 훗날 그의 사제품을 허락한 쿨봉 주교다.
쿨봉 주교는 동료 사제들에게 비안네의 사제품을 두고 물었다.
“비안네의 신심이 깊습니까”
예기치 못한 질문에 사제들은 “공부는 못하지만 신심은 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쿨봉 주교는 비안네의 사제서품을 허락하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하느님의 은총이 그의 부족함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A J 크로닌의 소설 ‘천국의 열쇠’에 등장하는 프란치스 치셤 신부는 가난과 겸손, 정의로 대표되는 인물이다. 책을 덮으며 “참 인간적이다”라고 되뇌었던 기억이 새롭다. 어쩌면 그의 인간적인 모습도 하느님을 향한 충직한 신앙의 또 다른 모습이었으리라. 성공을 위해 배신과 술수가 판치는 세상에, 비록 더디지만 정의와 선을 따르는 것이 마지막 승리자임을 치셤 신부는 그의 치열한 삶을 통해 보여준다.
우리에게 너무도 친근하고 익숙한 돈 까밀로 신부 역시 하느님 사랑은 곧 인간 사랑임을 일깨우는 인물이다. 어린 양처럼 순한, 가슴이 따뜻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까밀로 신부야말로 현대인들이 곁에서 보고 싶어하는 사제가 아닐까.
국내 사제 가운데 한 분에 대한 기억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전주교구 김병엽 신부님이다. 오래전 일이다. 남원이던가, 사목하시던 본당에 취재갔을 때 일이다. 두어 시간 취재 후 돌아가려는 기자에게 점심을 못챙기고 보낸다며 아쉬워하던 그 눈빛이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몇마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말마저 입안에서 웅얼거려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분의 진심이 한순간 폐부 깊숙이 전달되어 오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았다.
한참 후에 그분의 유고집에서 신부님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당 앞을 지나가던 걸인에게 차고 있던 시계와 외투를 벗어주셨던 분. 남긴 것이라곤 소지품 몇가지와 그가 무척이나 사랑했던 청소년들을 위해 쓰이길 바라는 약간의 돈과 유언장이 전부였다. 불의의 사고로 선종하신 뒤 유언에 따라 시신은 연구용으로 기증되었다.
평생 단 한번 잠시 스친 얼굴인데, 지금 이 순간 더욱 또렷이 신부님의 모습이 되살아나는건 무슨 연유인지…
200여 년 전 살았던 비안네 신부와 소설 속 인물인 치셤, 까밀로, 그리고 김병엽 신부님. 이들은 세상의 가치판단을 거스르는 용기와 열정을 지녔다. 이웃과 타인을 향하는 따뜻한 시선과 배려, 옳은 일에 뜻을 굽히지 않은 신념 또한 공통적이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은 하느님에 대한 깊은 체험이 아니었을까.
사제의 해를 지내면서 하느님의 사람이요 교회의 사람들인 ‘사제(직)’에 대해 묵상해본다. 사제의 해는 바로 이러한 사제들을 위해서 특별히 기도하고 희생하는 시기가 되었으면 한다. 사제 탄생의 축복과 기쁨을 더 많은 가정, 더 많은 본당에서 누릴 수 있기를 또한 빌어본다.
보너스 한가지. 본지가 한 해동안 연재할 사제의 해 기획 ‘사제의 사제(師弟)-사제열전’을 통해서도 재미와 감동을 느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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