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정미소와 제재소(製材所)를 겸했다. 정미소는 쌀을 정제하는 곳이고, 제재소는 큰 나무를 켜 재목을 만드는 곳이다. 정미소 덕분에 전쟁이 끝난 무렵 무지무지한 가난 속에서도 더러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제재소 덕분에 어린 시절 나무 톱밥으로 ‘반주깨미’(소꿉장난) 같은 장난질들을 하며 자랐다.
우리집엔 늘 밤낮으로 일하는 일꾼들이 있었고, 그들은 집에서 새참 같은 끼니를 챙겨먹곤 했다. 그들은 반드시 밤참을 먹었는데, 어머니는 밤참으로 김치와 밥을 넣고 끓인 국밥을 내놓았다. 우리 고향말로 그것을 ‘국시기’라 부른다.
멸치가 조금 들어간 것이 전부였던 국시기는 왜 그렇게 맛이 좋았는지. 지금은 제아무리 좋은 김치로 끓여내도 그 맛이 나질 않는다. 요즘에도 감기를 앓을 때면 그 국시기를 끓이곤 하는데, 국물만 마셔도 속에서부터 뜨끈뜨끈해 오던 그때 국시기의 맛과는 거리가 멀다. 겨울밤 시장기가 돌 때 텃밭에 묻어 둔 고구마나 무를 깎아 먹는 것이 그 시절의 간식이었다. 여기다 국시기 한 그릇 더하면 추위도 풀리고 뱃속이 편안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해 주시는 것은 뭐든 맛이 있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음식은 ‘약지’라는 무말랭이와 청국장이다. 무말랭이는 조청에 고춧가루를 버무린 것인데, 반지르르하게 윤기가 나는 것이 고기처럼 쫄깃해 씹을수록 맛이 났다. 청국장도 그랬다. 생각해보면 두부나 조금 들어갔을 뿐 달리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지금 내가 그것을 끓여보면 그 맛을 낼 수가 없다. 따뜻한 밥에 청국장과 무말랭이를 넣고 비비면 그 맛은 어떤 고통까지도 잠시 잊게 했다.
나는 그 맛과 영양으로 어린 시절의 건강을 지켰으리라. 그뿐인가. 지금 형편없이 비틀거리는 요만큼의 건강도 그 시절의 뿌리가 아직까지도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성질 까다로운 나는 아랫목 청국장이 뜰 때면 냄새난다고 지랄을 하곤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는 냄새쯤은 참아야 한다’고, ‘만사가 다 그런 것’이라고 철학적 메시지까지 곁들이곤 했다.
먹을거리에 얽힌 고통의 추억도 있다. 나는 다섯 번째 딸이다. 세상에 나올 때부터 얼마나 어머니를 실망시켰겠는가. 슬쩍 죽어줬으면 좋을 그런 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로 내 아래 동생이 아들로 태어났다. 나랑 세 살 터울이 났던 그 동생을, 아니 아들을 어머니는 신처럼 모셨다. 그러니 내 처지는 더욱 난처해졌고 천덕꾸러기로 변했다.
내가 아홉 살 때였던가. 어머니는 쇠고기를 사다가 석쇠에 구워 아들의 입에만 쏙쏙 넣어 주곤 했다.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배 아파했고, 배가 아픈 만큼 어머니를 미워했다. 동생이 고기를 다 먹었다며 일어나 나가면, 나는 얼른 달려가 쇠고기를 구웠던 석쇠를 들었다 놨다 하며 고기냄새의 여운을 맡곤 했다. 그래도 그리움이 풀리지 않으면 뒤꼍으로 나가 엉엉 울었다. 아홉 살의 상처는 너무나도 오래 갔다. 비단 쇠고기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가끔 아들에게 삶은 계란 한 알을 밥그릇에 놓아 주곤 했다. 그마저도 딸년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도 그 계란만큼은 죽기를 각오하고 먹고 싶었다. 계란 한 알에 인생을 포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그것은 고통이자 분노를 넘어 복수심으로 전환됐다.
나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계란 한 알’이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나는 여고시절을 부산에서 자취를 하며 보내게 됐다. 부산에서의 첫 날밤, 나는 그 영원한 숙제를 풀었고 무던히 애태우던 나의 소원을 성공리에 이뤘다. 계란 열 개를 삶아 한꺼번에 다 먹었다. 다음날도 열 개, 그 다음날도 열 개씩을 삶아 다 먹어 치웠다. 그러나 그 황홀할 정도로 맛있던 계란에서 서서히 썩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곧 계란은 내게 있어 이 세상에서 더는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 됐다.
인간관계도, 꿈을 이루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조금씩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폭식을 하거나 붙잡으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정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리움이다. 조금 부족하지만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마음. 이것이 우리 삶의 창조성을 뒷받침해 주는 에너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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