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예수성심대축일로부터 사제의 해가 선포된 후로 나는 줄곧 ‘아름다운 사제’에 신경을 모았다. 교황님의 선포에 이어,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인 우메스 추기경이 세계 각국 주교회의 의장 앞으로 보낸 서한의 한 구절이 나를 사로잡았다. ‘사제들이 자신의 직무와 스스로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발견하고’에서 이 ‘아름다움’이란 낱말이 어쩌면 그렇게 신선하게 느껴지는지. 흔하디 흔한 이 낱말이 생전 처음 듣는 소리처럼 말이다.
나의 이런 감정을 요모조모 따지느라고 시간을 꽤 보냈다. 여태껏 나는 사제들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랬다. 작은 일에도 감동을 잘하는 나는 참 괜찮은 사제, 좋은 사제, 훌륭한 사제로 표현한 경우는 많았지만 ‘아름다운 사제’로는 말하지 않았다. 사제를 거룩하게 볼지언정 아름답게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제의 해를 계기로 사제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라니. 설사, 신자들이 사제를 어떻게 보든지 간에 먼저 사제 자신들이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제의 자존감을 회복하라는 메시지다. 사제의 직무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며, 직무를 수행하는 사제는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를 재발견하여 자존감을 회복한 사제에게서 우러나는 아름다움을 신자들이 바라보아야 한다.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선종 150주년을 맞아 사제의 해가 선포된 후로 본당신부의 주보성인인 이 성인의 행적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교황님의 선포문에는 시종일관 아르스의 본당신부였던 이 성인의 가르침과 모범이 사제 모두에게 중요한 준거가 되어야 함이 강조되어 있었다. 이 성인은 매우 겸손했지만, 사제로서 자신이 신자들에게 무한한 은총이 된다는 것을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의 마음을 따르는 착한 목자는 좋으신 주님께서 한 본당에 주실 수 있는 최고의 보화이며, 하느님 자비의 가장 고귀한 은총입니다.”
나는 이제 비안네 신부에게 반해버렸다. 자신이 신자들에게 ‘무한한 은총’이 된다는 것을 확연하게 말할 수 있는 그분은 그야말로 스스로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발견한 사제다. 아름다운 사제.
비안네 신부가 모든 사제의 귀감이 되기까지 눈부신 행적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고해성사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전율이 왔다. 지지리 공부 못한 비안네는 깊은 신심 덕분에 뒤늦게 사제품을 받긴 했지만, 고해성사 집전권은 유보되었다. 그의 스승인 발레 신부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비안네가 하루 빨리 신자들의 영혼을 치유할 수 있게 고해성사 집전권을 위해 노력했다. 드디어 고해성사 집전권이 내려졌고, 비안네 신부의 성덕을 믿었던 스승 발레 신부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첫 고해자가 되었다.
비안네는 신자들에게 고해성사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설득했고, 감실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냄으로써, 신자들에게 본당신부가 언제나 말을 들어주고 용서해 줄 채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점차 소문이 널리 퍼져 참회자가 프랑스 각지에서 모여들자 그는 하루에 16시간씩이나 고해소에 머물게 되었고, 아르스는 ‘영혼들의 위대한 병원’이 되었다. 하느님께 용서받고자 하는 깊고 겸손한 열망에 이끌려 그 고해소로 찾아온 이들은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는 ‘하느님 자비의 홍수’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나는 비로소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를 앞세워 사제의 해를 선포한 의미를 깨달았다. 교회가 사제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사제가 ‘무한한 은총’임을 사제 자신도 알고 신자들도 깨닫는 해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잊고 있었다면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고, 알고도 실행하지 않았다면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최근에 읽은 어느 사제의 글이 생각난다.
“갑자기 나는 신부 된 것이 억울했다. 신부가 나를 큰소리치고 반말을 일삼는 버릇없는 존재로 만들었구나. 나는 정말 왕처럼, 보스처럼 살고 싶지 않다. 아무한테나 큰소리치며 뻔뻔하게 살기 싫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반말을 하며 살고 싶지 않다. ‘권위주의적’인 모습으로 봉사하고 군림하며 사랑을 펼치고 싶지 않다. 신부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 글 또한 사제가 신자들에게 ‘무한한 은총’임을 재발견하려는 한 사제의 화해의 성찰임이 공감되어 참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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