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란 반드시 기쁠 때나 재미있을 때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진한 감동의 눈물 속에서도 웃음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런 웃음은 맑고 눈부셔서 막 빨아 햇빛 속에 널어놓은 하얀 옥양목 수건 같다. 고운 흰빛으로 환하게 눈부신 웃음이다. 그런 웃음은 슬픔의 끝자락을 넘어 감동의 순간에도 묻어 나오곤 한다.
그렇다. 웃음은 절망의 순간에도 터져 나올 수 있으며, 고통의 순간에도 결코 멀어지지 않는다. 그 속에서도 웃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가슴속 꽃잎 같은 그 웃음을 지금 꽃피워내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어렵고 힘든 시절을 살아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것은 우리 민족의 핏속에는 애당초 웃음의 혈맥이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신바람’과 ‘흥’이라는 넉넉하고 희망적인 유전자가 있다. 그 유전자들은 바위를 뚫고 일어나 솟는 힘을 가졌다. 그리고 그 힘은 우리 민족이 높은 태산도 가볍게 오르며 극복할 수 있는 정신으로 이어져 왔다.
‘쾌지나칭칭’이란 민요는 선과 마디가 굵어 남성적인 노래다. 그런데 그 노래를 부르다 보면 눈물 또한 울컥하게 만든다. 마디 굵은 그 노래들은 우리 민족에게 힘의 유전자를 키우게 한 거대한 저력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바람이나 흥은 에너지의 원천이 됐고, 우리가 다 함께 웃을 수 있는 힘 그 자체로 발전했다.
하물며 우리들은 불덩이 속의 재로 변한 파산 위에서도 웃음을 이끌어냈다. 어김없이 ‘다시’라는 희망의 횃불을 밝혀왔다. 둘이 모이면 노래를 부르고, 셋이 모여도 노래를 불렀다. 그 힘이 웃음이었다. 우리들의 철골 같고 저돌적인 힘과 정신은 웃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집에 불이 나면 부자가 된다’고 역설적으로 말할 만큼 우리 민족은 결코 쓰러지지 않을 내재된 저력을 갖고 있었다. 집에 불이 났는데도 부자가 된다는 그 말씀은 어떤 재난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저력을 나타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부자가 된다니 집에 불이 나도 웃을 수 있었던 것. 쓸쓸하고 괴이하기조차 했던 그 웃음이 바로 우리들의 몸속에 흐르는 붉은 피의 외침이었다. 지금 우리는 이 웃음을 살려내야 한다. 더 큰 웃음, 더 힘 있는 웃음, 더 높은 웃음을 너도 나도 이끌어내 우리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힘의 유전자로 키워 올려야 한다.
나는 안다. 우리는 이청준의 소설 ‘눈길’을 읽고 마냥 울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빚으로 넘어가 버린 집을 아들이 오기까지 지키며, 그 집에서 아들을 보내고, 다시 눈길 위의 아들 발자국을 되짚어 돌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넋을 잃고 울지만은 않았다. 이런 슬픈 장면에서 예상치 못한 미소와 웃음이 번진다. 우리 민족만의 참으로 묘하고 신기한 혈맥이다. 그렇다. 이런 미소와 웃음이야말로 영원히 변치 않는 웃음이며, 영원히 우러나오는 샘 같은 웃음일 것이다.
일본의 작가 구리 료헤이의 원작 ‘우동 한 그릇’이 기억난다. 당신은 그 책을 읽고 울었는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가. 눈물이 볼을 적신다. 그리고 소리 내어 운다. 열 번을 읽어도 울음이, 아니 속울음까지 미어져 나온다. 그 다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결코 그냥 만들어낼 수 없는 맑은 미소와 웃음을 짓게 된다. 그 웃음을 장미 한 송이와 견줄 수 있을까, 목련 한 송이에 비할 수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만든 인간의 내면에 살아있는 사람의 웃음이다. 향기 짙은 꽃이다.
비단 한 폭보다 질기고 아름다운 웃음. 지금 우리는 웃어야 한다. 이런 웃음의 비타민이 필요하다. 웃음을 선물하는 마음으로 일어서야 한다. 혼자 웃고 둘이 웃고 셋이 웃으며, 웃음으로 집안을, 이웃을, 사회를, 국가를 가득 채울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 그래, 웃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선택된 사람들이다. 영원한 죽음도, 영원한 비극도 없다. 그것이야말로 부활정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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