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로마 8,35/공동번역)
새 공용성경에는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로마8,35)”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나는 공동번역의 구절을 더 좋아한다. 새 번역보다 공동번역이 훨씬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1990년 사제서품을 앞두고 선배들이 물려 준 전통에 따라 나도 ‘장차 어떤 사제로 살아 갈 것인가?’에 관한 ‘모토’를 정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막상 정하려고 하니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이것이 마음에 들면 저것이 눈에 들어오고 저것이 마음에 들면 이것을 놓치기 아까웠다. 또 부끄럽게도 본질은 외면한 채 멋진 글귀에만 한없이 매달려 있기도 하였다.
고민 끝에 나는 나의 ‘모토’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우선 “그리스도 안에서 살자. 그리스도인답게 살자. 맡겨진 직무에 충실하자. 직무를 통해 목숨을 내놓는 사제가 되자.”등등을 공책에다 적어 내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 속에 나를 사로잡는 성경구절이 들어있었다. 로마서 8장 35절이었다.
고맙게도 이 말씀은, 사제생활을 하는 동안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거의 본능에 가깝도록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사제생활의 햇수가 늘어갈수록 이 말씀은 더욱더 새로운 의미로 다가와 채찍질을 하였다. “아직도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가? 사람들에게는 잘해주고, 사랑으로 대하고 있는가? 맡겨진 직무에 충실하고 있는가?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 하는가? 가난하게 살고 있는가?”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나는 그 ‘첫 마음’에서 많이 멀어져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렇게 무뎌진 삶에 대해 이젠 걱정이 앞선다. 남은 날들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첫 마음’에서 멀어져가려는 나를 붙잡아 다시 되돌려오는 삶으로 살아 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어떤 누구라도 나를 감히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대원 신부·상주가르멜여자수도원 지도·안동교구 ·1990년 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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