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1998년의 아시아 경제 위기 후에 많은 회사들이 비용을 줄이고 유연한 인사관리를 하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본격적으로 고용하기 시작하였다. 정치권은 2003년부터 법제화를 논의하여 2006년 11월 30일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통과시켰으며 2007년 7월 1일부터 시행하였다.
이 법의 폐해는 시행 몇 주 전에 현실로 드러났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변경한 회사도 일부 있었으나, 정규직 변경을 피하려고 근무기간 2년이 채워지기 직전에 비정규직들을 대량으로 해고한 회사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모든 시민들의 공동선을 희생하여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가치관이 우선하는 사회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새로운 하층 계급으로 전락시키면서 차별을 더욱 심화한다. 통계청은 2007년 3월 현재 577만 명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07년 1/4분기에 월평균 127만 원을 받아 정규직 직원들의 평균 199만 원의 61.4%에 불과하다고 발표하였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많은 노동자들은 높은 보수를 받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는 보험 혜택마저 받지 못하는 이들도 있고, 충분하지 못한 임금에 허덕이는 이들이 대다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 제1항에서 부유하고 풍족하게 사는 사람들 바로 곁에 굶주림과 궁핍으로 고통 받는 개인들과 집단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어 선진국들과 저개발국가들 사이의 불평등뿐 아니라, 선진국 내 개인들 사이의 불평등도 비난하였다.
노동 시장에 융통성을 부여하려는 비정규직 제도에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본적인 요소들이 부족하다. 이런데도 정치가들 가운데 이 문제에 대한 해결안을 제시하거나, 모든 이를 위한 공동선을 말하는 이가 없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노동하는 인간」 제10항에서 노동자들이 품위 있는 생활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임금과 사회적인 혜택을 다루고, 제19항에서 노동자들이 수행한 일에 대한 정당한 보수와 함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생활과 건강을 확보하여 주어야 할 사회보장 의무가 현대 사회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구체적으로 의료 혜택, 휴식의 권리, 연금의 권리와 노후 대책 그리고 산업재해 보험에 대한 권리 등을 강조하였다.
비정규직 제도는 노동자들 중에서도 하층 노동자들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같은 일에 같은 보수’라는 상식적인 법칙도 위반한다. 한국개발원은 최소 생계비 이하의 가구가 2009년 1/4분기에 전체의 17.6%로 치솟았다고 발표하였다. 통계청도 10% 상류층의 수입이 하류층 10%의 수입보다 10배로 늘어났다고 발표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회칙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 2009. 6. 29)에서 “부요한 나라에서는 사회의 새로운 부분들이 빈곤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새로운 형태의 빈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면서 “각 국가는 노동 시장의 규제 철폐와 유리한 회계 제도를 포함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생산 공장을 자국에 설립하도록 외국 기업들을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세계 시장의 경쟁에서 더 큰 유익을 얻어내려고 사회 보장 제도를 축소하였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권리, 인간의 기본권, 그리고 전통적인 복지 국가와 연결되었던 연대성은 큰 위험에 빠졌다.”
그리고는 “여기서 흔히 국제 금융 기구들의 압력으로 사회적 혜택 지출을 삭감한 예산 정책들은 묵은 위험과 새로운 위험 속에 시민들을 노출시켰다. 이런 무능력 상태는 노동조합과 기타 단체들의 효과적인 방어 부족으로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진리 안의 사랑, 제25항 참조)
빈곤선 아래로 떨어지는 가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수입 불균형 격차가 커지는 것은 대부분 세계 경제의 침체에 원인이 있다. 그러나 빈곤선 이하의 사람들과 빈곤선 이하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급속하게 많아지는 나라는 역동적인 경제를 창출할 희망이 없다.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노동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기업은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노동력밖에 없을 것이다. 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을 적게 받는 노동자들은 결국은 불충실하거나 비창의적으로 일한다. 이렇게 되면 회사가 능률적이 될 수도 없고 이윤을 많이 낼 수도 없다.
* 「진리 안의 사랑」은 공식 번역본이 없어 필자가 자의로 번역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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