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의 한 부제님이 최근에 말 한마디 때문에 개(犬)가 됐다. 사연은 이렇다. 부제님이 동료 부제님들 앞에서 공언했다. “내가 앞으로 술을 한잔이라도 마시면 개다.”
잠시 술을 멀리하고 깨끗한 정신으로, 제대로 한번 하느님 만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깊은 영적 고요와 평안에서 오는 행복 체험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 후 발생했다. 부제님이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하는 술자리에 초대돼 술을 마신 것이다. 자~, 이제 문제가 심각해 졌다. 말 한마디 때문에 부제님이 갑자기 개가 된 셈이다. 물론 만취한 것도 아니고 그저 소주 몇 잔 마셨을 뿐이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다. 부제님은 “동료 부제들이 나를 볼 때마다 웃으며 농담으로 놀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멋쩍은 듯 뒷머리를 만지며 허허 웃는다.
말(言)이 무섭다. 딸 둘을 키우면서 늘 체험하는 것이지만, 딸은 부모가 하는 말에 따라 그대로 성장한다. 얼마 전 초등학교 6학년 큰 딸에게 “아빠에 대한 잔소리가 심하다”고 했더니, 잔소리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술 마시지 마라, 담배피우지 마라, 면도 자주해라, 집에 일찍 들어와라…. 시어머니가 따로 없다. 딸은 예쁘다고 하면 예쁘게 크고, 똑똑하다고 하면 똑똑하게 자란다. 잔소리꾼이라고 하면 잔소리꾼이 된다. 한마디 말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장 상사 혹은 후배의 말 한마디 때문에 상처받아 평생 동안 시퍼렇게 멍든 가슴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수도원에서도 선배 수도자들의 말 한마디 때문에 상처받는 어린 수도자들이 많다. 심지어는 성소의 진퇴까지 고민할 정도다. 신자들은 신부님의 상처 주는 말 한마디를 평생 안고 간다.
“그 정도 말로, 상처를 받아? 상처받는 사람도 문제가 있는 것 아냐?”라고 말한다면 그 말에 또다시 상처받는다. 말 폭력 가해자는 “실수였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니까 잊어라” 혹은 “미안하다”며 넘기면 그만이지만, 듣는 사람은 멍든 가슴을 내려다 볼 때마다 복장이 터진다.
그렇다면 ‘칭찬 일색’은 어떨까. 극과 극은 항상 불편하다. 가식적인 말로 상대방에게 억지 칭찬을 해서 혼동을 주라는 것은 아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할 수 있지만, 그 춤으로 인해 옆에 있던 멀쩡한 새우의 등이 터질 수도 있다.
말에 진심을 담되, 그 진심을 갈고 닦으라는 것이다. 문제는 진심이 그렇게 쉽게 수양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인격과 심성이 성인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다면 말을 아껴야 한다.
오늘 집을 나서기 전, 촛불 하나 켜 놓고 잠시 명상에 잠겨 보자. 그리고 오늘은 나를 높이는 말이 아닌, 남을 높이는 말을 하겠다고 결심해 보자.
교부 히에로니무스는 “악마 같은 죄는 혀에서 나온다”고 했다. 성경도 ‘혀에 죽음과 삶이 달려 있다’(잠언 18,21)고 적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는 성령께서 알려주신다(마태 10,19 마르 13,11 참조).
맑고 밝은 새내기 성직자들의 유쾌한 일화를 소개하기 위해 시작한 글이, 쓰다 보니 심각해 졌다. 부제님을 위해 기도한다.
“하느님, 부제님이 그리스도의 양떼 몰이를 돕는, 그런 늠름한 양치기 개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성령께선 튼튼한 밧줄 하나를 준비해 주세요. 부제님이 도망가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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