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갤럽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행복에 대한 첫 번째 조건으로 건강을 꼽는다고 한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의 선진국들도 삶의 질을 논하는데 있어서 건강은 늘 첫째 순위로 나타난다.
건강하지 않다면 꿈을 이룰 수도 없고, 남에게 큰 폐를 끼치게 되며, 인생이 초라해지고, 결국엔 불행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건강에 관해서는 절대로 양보할 수가 없고 행복의 첫째 조건으로 건강을 꼽는지도 모른다. 건강해지려는 목적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함일 수도 있으나 결국엔 오래 살기 위해 그렇게 건강에 집착하는 것이다.
죽음이 두려움이며 끝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하게 된다.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다. 그렇다. 나도 오래 살고 싶다. 그래서 좋다는 약도 먹어보고 나쁘다는 것은 기겁을 하며 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몸에 나쁘다는 것 중에서도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은 아침에 마시는 커피 두어 잔이다.
오래 살고 싶은 이유는 많다. 특히 삶의 기쁨을 느낄 때가 그렇다. 자연의 변화 속에서 생명의 기쁨을 느낄 때, 나뭇잎 하나하나의 살아있음을 볼 때, 꽃이 피고 질 때, 바람이 불어올 때, 노을이 질 때, 아침이 오기 전 푸른 새벽을 거닐 때, 새벽 두시 기도가 끝나고 어둔 창을 열어볼 때, 고요할 때, 아침 태양이 거대하게 떠오를 때, 여행을 하면서 친구들과 식사를 즐기며 나눌 때, 이야기 속에서 노래를 부를 때, 가족들과 어울려 과일을 먹을 때, 멀리 떠나간 친구의 전화를 받을 때, 생일이나 어버이날에 딸들에게서 편지를 받을 때, 그리고 마음에 드는 시를 썼을 때, 나는 좀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오래 사는 일보다 많이 사는 사람을 볼 때 내 마음은 더욱 경건해진다. 예수님은 33년밖에 살지 못했지만, 몇 천 년 동안이나 온 세계의 인류들에게 지금까지도 감동을 주신다. 그 감동을 주시기 위해 콩 한 알 정도의 분량을 소비했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실 감동은 아직도 무한의 경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고, 그분의 뒤를 좇는 일은 너무나 거대한 길이다. 제아무리 미사를 드리고 기도를 바친들 다가설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제자리걸음이 될지라도 기도를 드리고,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새벽시간을 서두르고, 성가를 부르고,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 서 있기를 기원하며 두 손을 모은다. 이런 우리들을 보고 예수님은 웃고 계실까. 그 노력이 가상하다며 보기 좋다고 하실까.
김대건 신부님은 26세에 순교하셨다. 짧은 생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생애를 사신 신부님은 100수를 지낸 평범한 인생보다도 더 빛나는 삶을 사셨다. 두렵고, 무섭고, 끝없는 길을 가시면서도 뒤돌아 갈 생각 없이 예수님을 따라가신 김대건 신부님. 그 생애는 비록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너무나 많이 사신 삶이다.
양보다 질이라는 인생의 무게를 계산한다면, 아마도 사람 중에는 예수님이 가장 무겁고 많은 양의 삶을 사셨을 것이다. 그분은 결국 주 하느님이 되셨으니 참으로 많이 사는 생이었다. 게다가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사랑을 보여주셨다.
26세에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친 김대건 신부님의 삶도 사랑의 삶이었다. 신부님의 삶은 오늘날 예수님의 사랑을 평범하게 이해하는 우리들을 새로운 신앙의 길로 안내하도록 돕는 특별한 죽음이었던 것이다.
의미 있고, 이유 있고, 그리고 필요 있는 하루를 사는 일이 바로 많이 사는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주일미사마저도 자꾸 뒤로 미루고, 9일기도를 외울 땐 입으로만 중얼거리고, 머릿속 생각은 별별 곳을 다 싸돌아다니는 무성의하고 집중력 약한 나 같은 사람이 많이 사는 삶에 다다르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모시고 성모님을 따르는 우리 신앙인들을, 비록 때로는 ‘얍삽한’ 신앙생활을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애교로 봐주시며 웃고 계시지는 않을까. 정신은 누더기지만, 그래도 가끔은 속죄의 소낙비를 주룩주룩 맞고 눈물 나는 기도를 바치는 우리들의 손을 하느님께서는 놓지 않고 잡아 주시지 않을까. 그렇기에 신앙적인 행복은 우리들의 빛나는 양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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