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또 오나요?”
“또 오다니. 계속 내리던 중에 잠시 그쳤을 뿐인데.”
“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장마철이니 비가 오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라는 거지. 우리나라는 6월 말부터 8월초까지는 장마기간이어서 비가 내리는 것이 정상인데, 고맙게도 잠시 멈춰 준거야.”
“그걸 모르는 게 아닌데 날마다 구질구질하게 오니 지겨워서요.”
“심정은 알겠는데 이렇게 비가 와주지 않으면 세상이 더 구질구질해질걸? 그러니 매일 비가 오더라도 받아들여야 해. 그리고 푸념하기보다 잠시라도 멈추어준 것을 고마워해야 해. 비가 오면 오는 비를 감사하고 그치면 그친 것을 감사하는 마음, 즉 모든 일에 대한 감사를 이럴 때 누려보는 거야.”
세 아이를 키우면서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산 적이 없다. 누군가 버린 것들을 주워다 고쳐 쓰고 있지만 아주 견디기 힘들 때만 잠깐 도움을 받는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2도쯤, 아이들이 어른보다 다시 2도쯤 온도를 더 느낀다고 한다. 참지 못한 아내와 딸들이 선풍기를 돌려댈 때면 가장인 내가 공자님처럼 근엄한 목소리로 주문을 왼다.
“더위를 이겨내는 한 가지 비결은 더위를 받아들이는 것이니라.”
“흥. 빼빼 말라서 더위도 안 타게 생겨가지고 남 더운 것도 모르다니. 누군 선풍기를 돌리고 싶어서 돌리는 줄 알아요? 근데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덥지?”
“더운 것이 정상 아닌가? 선풍기를 돌린다고 더위가 달아나나요? ‘여름은 모름지기 더워야 맛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더위를 받아들이면 그래도 견딜만하던데. 여름이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땀을 흘려볼 수 있겠어. 그래도 안 되면 아주 추워서 힘들었던 겨울을 생각한다던가.”
“에고. 조금도 도움이 안 돼. 알았으니 비켜요. 선풍기 바람 가로막지 마시고. 여름보다 당신이 더 더워.”
이렇게 또 하나의 여름이 깊어간다. 지겨운 장마 비와 함께. 찌는 듯한 무더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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