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영혼이 없습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귀를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당사자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으니…. TV 화면 속의 주인공은 고위공직자였다. 더욱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그런 말을 하는 이의 얼굴에서 그다지 부끄럽다는 인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성이 어둠에 가려진 시대에는 ‘여성은 영혼이 없다’는 결론이 받아들여진 적도 있었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만큼 ‘영혼이 없다’는 소리는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치욕이라 할 수 있다.
간간이 들리던 ‘영혼이 없다’는 소리는 최근 그 어느 때보다 귓속은 물론 마음마저 심란하게 만든다. 대체로 공직에 있는, 특히나 검찰 경찰 등 하나같이 힘깨나 쓰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 자주 쓴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른바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에 있음에도, 그 권력을 자신의 양심이나 원칙에 따라 쓰지 않고 그 자리를 맡긴 누군가를 위해, 그 누군가의 ‘의지에 따라’ 쓸 따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들의 말투에서는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뜻이 언뜻언뜻 비친다.
이른바 공복(公僕)이라 불리는 이들에게 그 자리를 부여하고 권력을 맡긴 이는 다름 아닌 평범한 다수 대중인데 그들이 말하는 ‘누구’에서는 ‘주인’이 철저히 배제돼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 스스로도 인식하거니와 그런 이들을 세운 사람도 아마 ‘영혼’이 없든지 아니면 잠자고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이러한 모습이 일반인들에게까지 번지다 보니 이른바 ‘높은 분’들을 모시고 있는 이들의 입에서도 “영혼이 없다”는 말이 습관적으로 나오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아니, 이제는 대놓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형국이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몸소 당신의 숨까지 불어넣어 사람을 만드셨는데 그 사람들이 영혼이 없다고 스스로 떠들어대니….
그런 말을 무슨 ‘위세’인 양 해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기가 찰 노릇이다. 그것도 훌륭한 신앙인이라는 평판을 듣고 있는 이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러한 언행은 ‘불경죄’를 넘어서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Language is the house of Being)’고 했다. 말 속에 그 시대와 현실 삶이 들어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한 사람의 말은 그가 어디에 앉아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런데 누가 우리 사회에 숱한 영혼이 없는 이들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최고 위정자마저 국민적 합의보다는 자신에게 굴종하는 모습을 바라기 때문에 영혼 없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에게 책임지고 중립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법적 신분 보장까지 받는 공직자들이 언어의 유희에 기대어 다시 되돌리기도 힘든 일을 벌여 놓고 ‘시켜서 했다’는 방패 뒤에 숨으려 하기에 영혼 없는 이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은 만물의 주님으로부터 저절로 주어진 것이지만 고귀함을 간직한 영혼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혼이 없다고 말하기에 앞서 한 번이라도 자신이 지녔던 영혼의 시원(始原)을 돌아본다면 함부로 그런 말을 내뱉지는 못할 것이다.
영혼이 있는 이들을 보고 싶다. 하느님이 불어넣어 주신 숨이 다하기까지 자신의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는 향기로운 영혼을 지닌 이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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