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웃는 사람이 아니다. 내게는 화를 삭이고 웃음으로 대신하는 어른스러운 덕망도 거의 없다. 내성적이어서 작은 걸림돌에도 쉽게 포기한다. 우울해 하며, 혼자 놀기를 스스로 자청하는 성향도 짙다. 결코 밝거나 좋은 성격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도 나는 어둡다.
정신 병리학적으로 보자면, 내겐 우울증이란 우중충한 병이 자리 잡고 있을 법도 하다. 순간 자신이 없고 뒤로 물러나며, 누구와 견주는 일은 아예 생각지도 못하고, 싸울 일이 생기면 눈물부터 나 지레 겁을 먹게 된다.
명랑하지도 못하고 약간은 폐쇄적이어서, 여름에도 커튼을 내리고 어둡게 하고 있기를 좋아한다. 나도 이런 내 성격이 싫다. 그러나 내게는 특별한 부분이 하나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언제나 ‘그래, 난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 말이다. 그것은 아기들을 보면 도저히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식당 같은 곳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을 보면, 처음 본 사람인데도 몇 탁자를 넘어서서 다가가 아기를 안아보곤 한다. 그렇게 한 번 아기를 안아보고 올 때면 내 안에 웃음을 세 트럭쯤 싣고 오는 듯하다. 원래 웃음이란 내 뿜는 것이지만 때론 내 안에 쌓을 수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식당이 아니라 그곳이 좁아터진 버스 속일지라도 용케 그 아기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아기의 눈을 맞추고 옹알이를 듣고 한 번 안아 본다. 그러면 마치 웃음을 몇 천 톤 정도 등에 지고 오는 느낌이다. 거리에서도 그 버릇은 여전하다. 인파속에서 아기를 보게 되면 그 찰나에도 큰 소리로 웃으며 외친다. ‘아기다!’ 나는 이렇게 아기들을 볼 때면 즐겁고 행복하고 웃음이 터진다. 그것이 비록 스쳐가는 짧은 순간이라 할지라도….
누구라도 그럴 것 같다. 어찌 아기들의 그 순진무구한 얼굴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아기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스치는 바람도 물에 깨끗이 씻어 그들에게 보내고 싶어진다. 조몰락거리는 손, 오물거리는 입술, 감은 듯 뜬 듯한 눈…. 하느님도 아기에게는 눈을 떼지 못하실 것이다.
내게는 손자가 셋이 있다. 그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나는 정말 행복했다. 가슴이 떨렸다. 자주 손을 씻었다. 마음을 정돈해야 했다. 그 아이들은 지금 너무나 자랐다. 공부에 바쁘다. 실연을 당한 기분이 들었다. 난 손자들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그대로 아기로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훌쩍 커버렸고, 이제 사춘기를 지내고 있다.
아기들의 또 하나의 이름은 웃음이다. 이 세상의 가장 절대적 순수와 아름다움, 눈물겨운 사랑으로 가득한 초자연적인 자연이 바로 아기다. 나는 아기와 마주할 때면 늘 조심스러워한다. 저 미물이 이 거대한 늙은이의 협잡을 마치 다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앞으로도 아기 앞에 서기 위해, 내 웃음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난 스스로의 거짓을 무너뜨려야 하는 쇄신이 필요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아기들은 계속해서 태어났으며 세상 어디에도 존재했다. 그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은 영원히 웃을 수 있으며, 우리의 행복 또한 어디에도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웃음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아기를 바라볼 때 나오는 그 웃음을 끌어내야 한다. 우리들이 잃어버린 웃음, 사는데 바쁘다고 밀쳐놓은 그 웃음을 찾아내 쾅쾅 웃어야 한다. 웃음으로 우리들의 비애와 슬픔을 이겨내고 극복해야 한다. 웃자. 내가 먼저 웃겠다. 함께 웃자. 그러면 우리 옆의 울음과 고통이 놀라 달아날 것이다. 우리는 손잡고 다시 함께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성모님과 함께 드리는 묵주기도를 좋아한다. 탄생과 부활을 반복하는 예수님의 여정을 따라가는 기도는 참으로 눈부시다. 게다가 성모님은 언제나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신다. 자라지 않고 영원히 아기의 모습으로 계시는 예수님을 말이다. 왜 성모님은 늘 아기 예수님과 함께 하실까? 거기에는 분명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큰 교훈이 숨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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