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콘서트를 위해 내설악으로 가고 있었다. 올여름에 피서객이 가장 많이 몰려있다는 주말 오후에 가장 많이 밀리는 곳이다. 불과 70km를 5시간동안 가던 차가 고갯길에 서버렸다. 렉카가 와서 끌어갈 때까지 땡볕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방송관계자와 일정조율을 하였고, 가까운 성당의 도움으로 봉고차를 빌려 타고 가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 예정된 리허설은 고사하고 콘서트가 끝나기 전에 도착하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법대로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비상깜빡이를 켰다. 새로 뚫린 경춘고속도로는 갓길이 넓어 도움이 되었다. 경찰을 만날 것을 대비하여 목에는 기자증을 걸었다. 그 이후 2시간은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다. 막히지 않고 갈 수 있는 시간보다도 1시간12분을 앞당겨 도착하였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나니 무대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던 중 차가 고장이 났어요. 퇴촌성당의 도움으로 차를 빌려 타고 곡예운전을 하고 오는 동안, 막힌 길에서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는 수많은 운전자들이 나를 너그럽게 용서해 주었기에 제가 지금 여기 서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남긴 말씀이 사랑과 용서이고 돌아가신 추기경께서도 그러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삶으로 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잘되지 않는 용서에 집착하기보다 내가 얼마나 많은 용서를 받으며 살고 있는지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오늘 이곳까지 오는 동안 받아 누린 용서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가족캠프에 오신 여러분들께도 부탁드립니다. 가족과 이웃들을 용서하는 것도 소중하지만, 매일 용서받고 있다는 것을 잘 기억하는 것도 한없이 아름다운 일입니다.”
콘서트가 끝난 후 많은 사람들이 내게 다가와서 각자의 감동을 나누었다. 내 잘못을 기억하는 이는 없었다. 아름다운 일이다. 우리가 서로를 용서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