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자. 교장 끝자락에 교내에서 귀한 한 어린이가 생명을 잃었다. 그로 인한 충격으로 나 자신 몸져눕고, 손가락 하나 꼼짝 못할 정도로 심하게 아팠었다. 기다리는 건 죽음뿐, 나는 아예 장기와 사체 기증까지 서약하고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영영 바깥세상에 얼굴을 내밀 수 없으리란 체념 속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뭘 망설이는 거냐? 노인 학교에 다시 나가 서지 않고!
아, 20년 안팎 내가 토요일 오후마다 운영하던 노인대학이 생각났다. 그러나 이미 나는 학장직에서 물러난 데다, 피골이 상접한 상태에서 옛날 학생들을 만날 용기조차 없었다. 그런데 주님은 중앙본당 안나 요아킴 노인대학에 불러 세우셨다. 그게 새로운 대장정의 시발이 된 셈이다.
병마는 내 몸에서 몇 달을 버텨 내지 못했다. 의사 70명과도 씨름하여 이긴 그 놈이 두 손을 든 것이다. 바로 앉지도 못하던 내가 한 시간 꼿꼿이 서서 민요며 대중가요를 불러댔다. 고사성어며 전래동화도 풀이하고 구연하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겉옷까지 축축했는데, 땀조차 나지 않았다. 스스로 놀랐다.
때맞추어 수요가 엄청나게 불어났다. 불과 2년 남짓, 중단되어 있었던 1200회 수업 기록에다 200회를 더 보태게 되었다. ‘쩨쩨하게’ 천주교 교회만 고집할 수는 없었다. 개신교 교회에서도 불러만 주면 부리나케 달려갔다. 일반노인학교만 해도 마찬가지. 밀양과 김해 등지의 노인학교로까지 외연을 넓혔다.
노래는 내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기도라고 착각하였음일까? 나는 교도소며 시각 장애 복지관, 무료 급식소(아직은 노래를 못 부르고 있지만), 평화의 마을 등에도 드나들며 노래를 불렀다. 우여곡절 끝에 천주교 부산교구 은빛문화사목지원 단장에 선임되었다. 교구 내 노인 학교의 프로그램 운영에 필요한 강사 운용에 심부름을 하는 게 책무인가 보다. 글쎄다, 몇 달 지내고 보니 자격도 역량도 부족하다는 자괴지심이 앞선다.
지금은 대개 노인 학교가 방학에 들어간 줄 안다. 나도 충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 달쯤 칩거하면서 노래(민요 동요 가요 가곡 단가 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다. 2학기 때는 시도 간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싶다. 우선 목포의 어느 노인 학교, 거기서 ‘목포의 눈물’을 부를 수 있었으면….
이원우(아우구스티노·소설가·부산교구 은빛문화사목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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