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모어 대통령님!
숱한 죽음의 고비 때마다 당신의 든든한 힘이 되어 주셨던 하느님 품에 계시니 행복하십니까.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고 의지했던 주님과 함께 계시기에 영원한 천상 행복을 누리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대통령님의 삶은 참으로 영욕의 세월이었습니다. 다섯 번에 걸친 죽을 고비와 6년간의 감옥살이, 55차례의 연금, 10년의 해외 망명생활.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었습니다.
“나는 어느새 이불 속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마구 울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1981년 2월 청주교도소에 수감됐던 당신께서 눈물로 쓰신 옥중서신의 한 구절입니다. 위대한 정치 지도자이기 전에 한 신앙인으로서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더 ‘짠’합니다.
하지만 어떠한 고난과 좌절도 당신의 고귀한 뜻과 꿈을 무너뜨릴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 모든 역경을 민주화에 대한 신념과 신앙 그리고 이웃의 사랑으로 극복하셨습니다.
1998년으로 기억합니다. 대통령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제가 지척에서 당신을 처음 뵐 수 있었던 해입니다. 당시 서울 세종로성당에서 거행된 ‘김대중 대통령 생환 25주년 기념 감사미사’를 취재하던 때였습니다. 초년병 기자였던 저는 우리나라 최고 지도자를 만난다는 기쁨에 가슴 설렛습니다. 그 날 당신께서 하셨던 말씀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까지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특히 이날을 기념하는 것은 일본에서 피랍돼 바다에서 죽기 전 주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우리민족을 도와주실 것이며 저는 국민들의 뜻에 부응하기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토마스 모어 대통령님, 지금 이 시간 모든 국민들은 당신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에 눈물 짓고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을 보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한국 가톨릭 교회와 우리나라의 큰 별을 잃고 말았습니다.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며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은 결코 당신의 삶이 정치인으로서나 신앙인으로서 헛되지 않았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서와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옥살이를 하는 역경 속에서도 오히려 상대방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 안으셨던 당신. 그래서 대통령께서는 훌륭한 정치 지도자이며 모범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당신의 평생업적을 글로 다 나열할 수 없겠지만 한국전쟁 후 첫 남북정상회담은 55년간 쌓였던 국민들의 울분과 한을 씻어내기에 충분했고,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큰 자긍심을 심어주었습니다. 신앙인으로서도 대통령께서는 사형제도 폐지와 생명운동 확산에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민주주의와 남북화해를 위해 평생을 바치신 당신의 열정과 헌신은 이제 우리들의 몫으로 남겨졌습니다. 당신이 뿌린 씨앗의 나무를 잘 키워 열매를 맺도록 노력해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대통령께서 보여주신 용서와 사랑, 민족화합의 숭고한 뜻과 정신을 본받아 이 땅에 주님의 사랑이 흘러넘치도록 힘을 모으겠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김 추기경님과 손을 꼭 잡으시고 함께 이 나라와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해주소서.
“주님, 이 세상에서 불러 가신 토마스 모어에게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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