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정도로 파란만장했던 삶의 십자가를 내려놓고 국민적 애도와 추모 물결 속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면에 들어갔다. 지난 2월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올해 들어 잇따라 정신적 지주를 잃게 된 많은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슬픔과 상실감으로 옷깃을 여미고 고인이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한마음으로 기원했다.
이 땅의 민주주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거목의 선종 앞에 오랜 세월 한국 사회를 갈라온 이념과 지역, 계층과 세대의 차이는 설 자리가 없었다. 국장 기간 내내 가톨릭교회를 비롯해 온 나라 안팎으로 넘쳐난 고인에 대한 추모 물결은 곧 삶에 대한 새로운 의지와 희망으로 승화되어 국민들에게 다가왔다. 특별히 고 김 전 대통령의 선종을 전후해 우리 사회에 일기 시작한 화해와 평화의 물결은 고인이 살아서 한 공헌에 못지않게 커다란 선물을 다시 한 번 우리 나라와 민족에게 안겨주고 있다.
북한의 최고위급 조문단이 국회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것을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과 만남으로써 그간 경색 일로를 걸어왔던 남북 관계에도 햇살이 비치고 있다.
또한 좌와 우로 나뉘어 서로에 대한 대안 없는 비난으로 낯을 붉혀온 사회 각계각층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번져나가고 있다.
모처럼 보는 이러한 희망의 빛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올바로 살려나가는 것이야말로 이 땅의 평화와 하나됨을 위해 살다간 고인의 유지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갈등과 대립의 원인에 눈 감은 채 입으로만 화합을 외칠 수 없음을 역사를 통해 보아왔다. 깨어있는 눈으로 사회적 약자인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직시하는 것을 참다운 화해와 평화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모든 사회적 논의를 통합해야 할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치권에 있지만 아울러 우리 사회의 중요한 한 축인 종교와 종교인의 몫도 적지 않음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의 중핵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 상당수가 종교인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생명의 파수꾼으로 불림 받았음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우리 사회를 좀 먹고 있는 어떠한 죽음의 세력에도 단호히 맞설 수 있는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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