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이…”라고 욕해도 할 수 없다. 오죽 답답하면 그러겠는가. 요즘 같아선 미신 이야기라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독한 ‘아홉수’다. 2009년 올해, 교회 내에 유난히 슬픈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서강대 장영희(마리아) 교수, 서울대교구 최석우 몬시뇰, 대구대교구 박창수 몬시뇰이 2009년 아홉수 해에 모두 우리 곁을 떠났다.
한국 교회뿐만이 아니다. 지난 4월 1일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이끈 신학자 중 한 명인 이탈리아 출신의 움베르토 베티(Umberto Betti) 추기경이 선종했다. 김대중(토마스 모어), 노무현(유스토) 전 대통령도 아홉수 해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끝날까 했는데…. 대구대교구 최영수 대주교가 8월 31일 선종했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교회는 또다시 마음 아파하고 있다. 인자함과 헌신의 목자, 최 대주교의 선종이기에 더욱 그렇다.
교회의 하늘을 수놓던 별들이 마치 별똥별처럼 떨어지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올해, 2009년에 일어나고 있다.
인터넷 국어사전은 아홉수를 ‘9, 19, 29와 같이 아홉이 든 수. 남자 나이에 이 수가 들면 결혼이나 이사와 같은 일을 꺼린다’로 풀이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주위에서 ‘아홉수 징크스’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야구경기에서 9승 달성 후 10승을 채우지 못하는 투수 이야기는 흔하다. 최근 한국 프로축구에서도 광주가 9승 후 6연패를 하며 승점 39점에 머물고 있다. 한수산(요한 크리소스토모)의 장편소설 「부초」에도 ‘아홉수가 안 좋아서 그런가 보다면서 여인은 혀를 찼다’는 말이 나온다.
예부터 마을 어른들은 이 ‘아홉수를 조심하라’했다. 과거에는 19세 혹은 29세 결혼을 피했다. 액운이 낀다는 것이었다. 유럽에서도 작곡가가 아홉개의 교향곡을 작곡하면 죽는다는 징크스가 있다. 베토벤, 드보르자크, 말러가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 숫자 ‘9’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왠지 아슬아슬한 느낌을 준다. 10을 이루기 직전이니까, 뭔가 조심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 2009년을 넘기지 못하고 참으로 많은 이들이 떠났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뺏어간 아홉수 2009년은 이제 기억하기 싫은 한 해가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수록 기억해야 한다. 신앙인에게 아홉수란 없다. 죽음은 스크린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앉아 영화 한편 보는 식으로 관람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죽음은 현실이다. 신앙인에게는 그 죽음을 극복할 힘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아픔에 대한 보상 희망도 있다. 부활이 그것이다.
만약 죽음이 죽음 그 자체로 끝난다면 아홉수 2009년이 싫겠지만,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고통이 없다면 부활의 영광도 없다. 죽음은 슬픔이 아니다. 새로 나아감이고, 건너감(파스카)이다.
2009년의 죽음들은 이제 새롭게 해석되어져야 한다. 잊고 싶은 아홉수 2009년이 되어선 안 된다.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먼저 떠나보낸 이들의 삶을 묵상하고 그 삶이 지금 나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도록 해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의 말과, 최영수 대주교의 마음과, 최석우 몬시뇰의 진지함으로 살아야 한다. 김 추기경의 감사하는 마음과 박창수 몬시뇰의 열정과 장영희 교수의 사랑이 ‘지금 여기서’(Hic et nunc) 다시 피어나야 한다.
아홉수 2009년을 마음에 안고 살아가련다. 기억하고 또 기억하련다. 아홉수는 이제 없다. 바둑이든 정치든 9단을 최고수로 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