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목요일마다 장이 선다. 늘 시간에 쫓기거나 게으름을 피우느라 장보기가 쉽지 않은 나는 집 앞에 서는 작은 목요시장을 좋아한다. 목요시장은 말이 시장이지 고작 세 개의 포장을 친 소규모 수준이다.
생선가게와 과일가게 하나씩. 그리고 두부와 멸치 등을 파는 잡화상이 전부다. 그러나 아파트 주민들을 겨냥하기에 무엇보다 신용이 우선이고, 또 물건들이 싱싱하고 품질이 좋아 언제나 믿고 살 수 있다. 내게는 목요일마다 찾아오는 아주 유쾌한 선물인 것이다.
내가 주로 구입하는 물품은 과일이고, 어쩌다 생선이며, 직접 해 갖고 오는 따뜻한 두부가 전부다. 그런데도 나는 상인들과 아주 가까운 사이가 돼 ‘장사는 잘 되냐’, ‘몸은 어떠냐’ 등의 안부를 묻곤 한다.
장사도 머리가 좋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그들을 보며 깨닫는다. 열 개도 넘는 바구니에 각각 다른 물건들을 채워 그 많은 호수를 틀리지 않고 각각의 집에 정확하게 배달해주기 때문이다.
생선가게는 늘 웃는 얼굴의 청년 둘이서 한다. 그들은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얼굴엔 어두운 그늘 한 점 없다. 그 젊은 나이에 생선 장사에 뛰어 들었다면, 묻지 않아도 몇 개의 절망산 쯤은 오르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늘 갓 잡은 생선처럼 튀는 탄력으로 싱싱하게 서 있다.
과일가게에는 중년의 부부가 있다. 머리가 절반은 하얗게 센 이들 부부는 큰 시장에서 값이 저렴하고 품질 좋은 과일을 골라오는 재주가 있다. 과일을 싸게 파는 오후께 찾아가면 고급과일을 싼 값에 먹을 수도 있다. 이들 부부는 서로 마음이 척척 맞는 것이 눈에 보인다. 척보면 어떤 사람이 무슨 과일을 찾는지 알고, 그 앞에 서서 바구니를 벌리고 있으면 이것저것 필요한 것만 골라 담아준다. 복숭아는 지금이 제철이고, 포도는 지난주에 샀단다. 이번에는 하우스 감귤이 좋고, 싸고 맛있는 멜론을 가져왔으니 꼭 먹어 보란다. 어쩜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이 읽어내는지….
두부를 파는 잡화상에는 40대의 아저씨가 혼자 물건을 판다. 가능한 한 유기농제품을 가져와 양심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그 사람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다 든든하다.
어느 목요일. 내가 외출하던 시간이 그들의 점심시간이었다. 바닥에 신문을 펴고 이것저것 반찬을 늘어놓고 세 집의 상인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는 것을 보면서, 나는 쭉 뻗은 건강한 다리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얼핏 밥과 반찬들을 보니 초라한 밥상이었다. 그럼에도 그들 모두는 땀과 웃음과 감사함이 범벅이 된 밥술을 입안으로 넣고 있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성찬인가.
나는 이 세상의 건강한 세포들이 힘 있게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수치심도 없이 땅바닥에 앉아 밥을 먹으며 터질 듯 웃는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마저 들었다. 자신의 노동으로 밥을 먹으며 인간적인 아름다움과 감동을 선사하는 모습을 나는 시장 안에서 본 것이다.
나는 그들을 보며 이들이 이 세상의 균형을 잡아가는 힘의 주인공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뒤뚱거리는 책상이나 밥상을 바르게 세우기 위해 우리는 가끔 종이를 겹쳐 상다리 밑에 받친다. 그 작은 종이 몇 장이 흔들리는 책상을 바로잡을 때의 감동을 그들 상인들에게서 느끼는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의 뒤뚱거림을 받쳐주는 작은 몇 장의 종이 같은 사람들이다. 쓸모없어 보이지만 균형을 잡는 소중한 밑받침의 역할을 하는 존재들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늘도 무너지지 않고 건강하게 나아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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