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네 임자이시니 그 앞에 꿇어 절하라 ”(시편 45,11)
대전교구가 60주년을 맞으면서 편찬한 ‘달릴 길을 다 달리고’라는 책이 있다. 선종 사제들의 약력과 남긴 글들 중에서 기억할 만한 것을 뽑아 실어 놓은 것이다. 처음에는 그분들의 서품 성구와 소감문을 실으려고 계획했었다. 성구가 사제의 첫 마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첫 마음은 어떠했고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10년 전에 나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서품 소감문을 썼다.
내가 택한 성구가 들어 있는 시편 45장은 ‘아리따운 말이 마음에서 우러나옵나니 / 내 노래는 임금님께 읊어 올리나이다’로 시작되는 감미로운 시이다. 성무일도 제2주간 월요일 저녁기도에 나오기 때문에 성무일도를 빠트리지 않고 하면 한 달에 한 번은 꼭 읊조리게 된다. 시편은 한 처녀가 이스라엘의 임금에게 시집가는 장면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화려해서 모자랄 것이 없어 보이는 공주(새 신부)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었다. 친정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새 신부에게 누군가 충격을 던지는 노래를 들려준다. ‘딸아 보고 네 귀를 기울여라. 네 겨레와 아비 집을 잊어버려라. 이에 임금이 네 미모에 사로잡히시리라. 그는 네 임자이시니 그 앞에 꿇어 절하라.’ 나는 하느님께 시집가는 신부(新婦/神父)이다. 내가 시집가서 할 첫 과제는 하느님을 사로잡는 일이다. 내 온 힘을 다하고 온 정성을 다하여 신랑이신 하느님을 사로잡을 것이다.
이것이 내 들키고 싶지 않은 첫 마음이다. 그 마음이 잘 간직되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웃지요’다. 내 미모도 예전 같지 않아 하느님을 사로잡겠다는 새 신부 때의 투지를 불사를 용기는 없다. 그럼에도 꿋꿋이 살아가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믿기 때문이다. 그분은 ‘심지가 깜빡거린다고 꺼버리지 않으시고, 갈대가 부러졌다하여 잘라버리지 않는 분’이시라고 하지 않던가!
‘주님, 제 아리따운 첫 마음을 보시고 부족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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